운 거 아녜요. 그냥 눈이 빨개진 것뿐.
23.3.2 커피를 끊었다.
나이를 먹으니 여기저기 잔고장이 나기 시작한 것인지, 몸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그중 과호흡이 가끔 오기 시작했다. 작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로 과호흡이 한 번 왔었는데 좋아지다가 어떤 날은 심해지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커피를 끊게 된 것이다. 그 이야기는 앞 글에 했으니, 아직 읽지 못한 분은 아래의 글부터 먼저 읽어보길 바란다.
3월 2일, 커피를 끊은 지 7일 차.
이 날은 새로 발령받은 학교에서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퇴근 전까지 끝내야 할 일들이 많은 학기 초라 서둘러 일을 하고 있었다. 퇴근 후 회식도 있으니 맛있는 걸 먹게 된다는 생각에 몰입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결에 거울을 본 순간, 내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조금 전 화장실에서 봤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눈이 빨간 그물을 씌워 놓은 것처럼 왼쪽 눈의 아랫부분이 충혈되어 있었다.
이런 적은 평생 한 번도 없었기에 두려움이 앞섰다. 이것은 혹시 눈병인가? 아니면 눈에 문제가 생긴 건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곧바로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옮길 가능성이 있다면, 퇴근 후의 회식에 가면 안 된다. 아니, 그것보다 내일 수업을 어떻게 하지?라는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학교 근처에 병원이 있어서 조퇴를 내고 병원으로 달렸다. 퇴근을 20분 남겨둔 상황이었지만, 그 20분도 참고 앉아 있는 게 힘들었다. 왜냐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의 아랫부분만 점령했던 빨간 그물이 서서히 왼쪽 눈 전체를 장악할 기세로 눈의 윗부분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 그래, 공포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어떻게 차를 타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짧은 시간 동안 밀려온 공포의 쓰나미를 뒤로 하고 병원으로 달렸다.
병원은 한산했고, 곧이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심플하면서도 사무적인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
"건조해서 그래요!"
"네?!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요."
"건조해서 그런 거 맞아요. 인공 눈물도 자주 넣어주시고, 처방하는 안약도 10분마다 넣어 주세요"
"혹시 옮길 가능성이 있는 눈병은 아닐까요?"
"지금 상태로는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요. 그래도 100% 장담이란 없겠죠. 휴..."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한숨을 내쉬셨다. 그만 물어보고 가라는 신호로 들렸다. 이렇게 불친절한 의사 선생님도 태어나서 몇 못 본 것 같다. 여하튼, 눈이 충혈된 이유는 건조였다.
처방받은 안약을 정말 10분마다 한 번씩 눈에 넣어줬다. 혹시 몰라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못하고 오빠 찬스를 사용해 집에 왔다. 2시간쯤 지나자 눈은 서서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렇게 증상은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이 시기는 내가 커피 금단으로 인해 온몸에서 수분을 갈급하던 시기다. 앞 글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심에도 화장실을 잘 가지 못하다가 서서히 화장실을 가던 그쯤인 것이다.
눈은 충혈됐고, 얼굴에는 여기저기 하얗게 일어났다. 아래의 사진이 너무 크게 확대되긴 했지만, 여하튼 아래의 사진처럼 피부가 벗겨지기도 했다. 사진으로는 알아볼 수 없지만, 오돌토돌한 것들이 얼굴에 일어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내가 생각하는 단어는 딱 하나뿐이었다. "못 먹어도 고!" 갈 때까지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커피를 끊은 지 16일 차, 3월 17일.
피부에 올라왔던 건조 증상은 모두 말끔하게 들어갔다. 세안을 할 때마다 오돌토돌하게 만져지는 것들도 모두 사라졌다. 안과에 다녀온 이후, 다시 눈이 충혈되는 일도 없었다.
16일 동안 딱 한 번 커피가 생각난 적이 있었다. 마치 헤어진 연인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런 그리움이 나타났을 때는 그냥 믹스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신기하게도 늘 마시던 카페라테나 아메리카노가 아닌 믹스커피 한 모금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럴 때는 그냥 마셔줬다.
다이어트를 하며 요요가 오는 이유 중 하나는 "절대로"라는 원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커피를 끊으며 나 자신에게 해 준 말은 '마시고 싶으면 마셔도 된다'였다. 다만, 좋지 않음을 알기에 "가끔"의 일탈은 허락해 준 것이다. 절대로 마시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 마시고 싶어지는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카페를 끊은 건 아니다. 카페에 커피만 있는 건 아니니까.
커피를 끊었지만, 카페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 티타임 인연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지난 글에 말했던 10시가 되면 몰려오던 죽을 것 같은 피곤함도 이제는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커피가 피곤함을 날려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죽을 것 같은 피곤함을 안고, 며칠 동안 10시만 되면 푹푹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피곤함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그래도 11시 반을 넘기는 건 어려우니 얼른 잠을 청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