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다. 간밤에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은 잠을 자고 있다. 일어나 기지개를 한 번 크게 켜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 아직 남아있는 잠의 안개가 가시기를 기다린다. 이제 집안일을 해 볼까. 나는 안주인이니까. 안주인, 이라는 말이 아직 어색하면서도 뿌듯하다.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하기 전에 재즈 음악을 틀어 놓는다. 음악은 지루한 집안일도 어깨춤을 추며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싱크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한다. 어제 저녁 한 끼의 흔적이 이렇게나 거대할 일인가. 밤이 되면 지쳐서인지 설거지가 유독 힘들다. 설거지며 청소를 워낙 꼼꼼하게 하던 엄마를 본 탓에 제법 오랫동안 설거지를 한다. 남편은 처음에 아내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고 설거지에 정말 진심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제는 수도세와 가스비를 걱정하며 그렇게 오래 설거지를 할 필요는 없다고 채근한다. 좀 더 빨리 끝내야지, 생각하지만 세제가 남아있을까 염려되어 여러 차례 헹구기를 계속해야 조금이나마 안심이 된다.
날은 차갑지만 햇살은 청명하다. 이런 날은 환기를 해야한다. 맞바람이 치도록 거실 큰 창과 부엌쪽의 작은 창문을 모두 열어놓는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남편이 자는 방에 찬공기가 들세라 안방문을 닫는다. 멀고도 익숙한 기억이 오버랩된다. 어릴 때는 겨울 아침에 침대에서 뭉그적대고 있으면 엄마가 환기한다며 창문을 열곤 했다. 춥다며 이불을 한껏 머리 위로 덮어쓰고 누워 있던 딸은 이제 엄마가 하던 일과를 반복하고 있다. 별 것 아닌 기억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십여 분이 지났다. 창문을 닫고 커피를 마셔볼까. 커피를 내리고 있으니 안방에서 인기척이 난다. 남편이 일어났다는 신호다. 아침이면 남편 안의 아이를 본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겹다. 빛줄기를 피해 베개에 얼굴을 묻고 꼼지락대거나 눈을 한쪽만 뜨고 몇 시냐고 묻는 남편은 유독 아이같다. 그런 남편을 조금이라도 더 자게 해 주고 싶어 최대한 기상 시간의 마지노선을 맞추게 된다. 주말에는 늦잠이든 낮잠이든 밀린 잠이라도실컷 자게 해 주는 것이 아내의 도리가 아닐까. 일어났어, 반갑게 이불 속을 파고든다. 참 따뜻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