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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서 더 강한 위기대응력의 비밀

예방하고 예상하고 대처한다

by 데이지

피할 수 없으면 준비하라


아이가 태어난 후, 삶에는 ‘예측 가능한 하루’가 사라졌다. 아침에 멀쩡하던 아이가 오후에는 39도의 고열이 오르기도 하고, 출근해야 하는데 이모님이 갑자기 늦으시기도 한다. 엄마가 하원시켜 주기로 했는데 엄마가 코로나에 걸리기도 한다. 어린이집이나 남편이나 친정엄마나 이모님의 전화가 울릴 때면 일단 걱정부터 앞선다. 어린이집에 수족구가 돈다거나, 아이가 콧물과 기침이 나는데 등원을 했을 경우 회의 중에도 계속 아이가 괜찮을까를 생각한다. 예정대로 됐을 때를 생각하는 시간보다 예측대로 되지 않았을 때를 계산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것이 일상이 됐다. 육아는 매일의 돌발 상황을 감당하는 훈련과도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는다. 개별 사건은 예측할 수 없지만, 위기 자체는 예측 가능하다. 아이는 언젠가 아프고, 회사 일은 언제나 갑자기 바쁘다. 문제는 ‘언제, 왜’ 생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문제는 반드시 발생한다. 시점을 정해서 찾아오지 않는다. 위기의 규모도, 중요도도 알 수 없다. 다만 무엇이든 발생한다는 것만이 기정사실이다. 워킹맘은 이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위기관리 전문가로 진화한다. 이것은 엄마로서의 본능이자 직장인으로서의 생존 기술이다.


Contingency Plan — 위기는 예외가 아니라 전제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주기적으로 ‘Contingency Plan(비상 대응 계획)’ 를 수립하고 테스트했다. 위기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사전에 시나리오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VA(Vulnerability Assessment)를 통해 취약점을 발견하고 보완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이와 같은 작업은 우리 삶에도 큰 도움이 된다. 워킹맘은 직장에서 얻은 지혜를 육아에, 삶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미 전술했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직장의 지혜와 육아의 지혜를 각각에 적용하고 접목해서 성장해 가는 것이 워킹맘 리더십의 목적이다.


변수가 가득한 삶을 사는 워킹맘은 중요한 영역마다 Contingency Plan을 세우는 것이 옳다. 등원이모님이 오시지 못할 경우, 친정엄마가 오시지 못할 경우, 남편이 갑자기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거나 출장을 갈 경우, 나 혹은 남편이 아플 경우, 아이가 아플 경우 등등. 아래와 같은 사항은 메모해서 냉장고나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는 것이 효과적이다. 위급상황에 누구라도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 건강: 아이가 주로 가는 병원 전화번호, 가까운 응급실 번호, 야간 소아과, 365일 여는 병원/약국의 위치와 연락처를 메모해 둔다.

어린이집 관련 비상 연락망: 어린이집 대표전화, 원장선생님 전화번호를 메모해 둔다.

담당자 연락처 및 주간 스케줄: 친정엄마, 남편, 이모님까지 연락 순서를 정하고 매주 주간 스케줄을 업데이트하여 파악해 둔다.


회사일에 필요한 '한 칸'의 여유 - 선제력의 힘


아이가 갑자기 아파 피치못하게 내가 하원을 시켜야 할 경우, 내 업무는 누가 하지? 업무에서의 Plan B와 백업 시나리오 역시 준비되어 있어야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다. 가장 좋은 것은 내 일을 대직자에게 맡기지 말고 내가 처리하고 퇴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운전할 때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듯, 미리 한 칸 정도의 여유를 확보하도록 하자. 중요한 보고나 기획안은 항상 예정된 마감일보다 하루나 이틀 전까지 초안을 완성해 둔다. 급할 경우 마지막 리뷰만 거쳐 제출할 수 있기 위해서다. 한 칸 먼저 움직이는 것, 중요한 일을 미리 처리해 두는 것은 단순히 일을 빨리 처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위기를 통제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쥔다는 의미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병치레, 일정 변경, 예기치 못한 회의나 보고 요청은 언제든 찾아온다. 그때 이미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면 대응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일을 하루, 이틀 일찍 처리해 둔 사람은 위기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미리 쌓아둔 여유는 위기를 ‘관리 가능한 일’로 바꿔 준다. 워킹맘의 진짜 경쟁력은 완벽함이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르는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두는 그 한 걸음의 선제력에 있다.


결론 - 위기관리는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아이의 장염, 도우미의 갑작스러운 결근, 남편의 출장,
이 모든 사소한 위기 속에서 워킹맘은 판단, 협상, 대응, 복귀를 동시에 해낸다. 워킹맘의 일상 자체가 곧 위기관리 대응 훈련의 연속인 것이다. 그래서 워킹맘은 위기관리의 전문가가 된다. 예기치 못한 문제에 당황하지 않고, 먼저 상황을 정리하고, 지금 가능한 자원과 해야할 일의 우선순위를 빠르게 파악한다. 단순한 생활력을 넘어 조직에서 꼭 필요한 위기대응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워킹맘은 위기를 피할 수 없다. 위기에 익숙한 삶을 살며 위기에 흔들리는 대신 위기로 인해 단단해지는 법을 배운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어떤 문제든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닥치기 전에 예측하고 위기가 발생한 후에는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위기 때 단순히 견뎌내는 사람이 아니라 신속하게 재정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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