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고, 계속 하고, 다시 한다
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자
(커버스토리 출처: tvN, 유퀴즈온더블럭)
“프로님, 브랜드 전략 마일스톤 다음주 화요일쯤 보고 가능해요?”
“네, 가능합니다. 화요일날 보고 드리겠습니다.”
금요일 오후, 갑자기 팀장님은 화요일날 보고를 하라고 하셨다. (우리회사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모두 ‘프로’ 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복직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복직 워킹맘은 예스맨이 되어있었다. 팀장님의 웬만한 요구에는 예스!를 외칠 수 있었다. 대화를 듣고있던 선배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좀 미뤄달라고 하지…”
“네 괜찮아요! 어차피 더 오래 준비한다고 엄청 잘할거 같진 않아요. 하하…”
“오전에 보내드린 자료를 미리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일단 마일스톤을 3단계로 나누어 만들어 보았고… 브랜드 피라미드도 마지막 장에 완성해 보았습니다.”
팀장님은 예리한 눈초리로 내가 제출한 보고서를 살펴보고 발표를 듣고 계셨다. 마흔이 넘은데다 애까지 낳았는데 내가 무서울 게 뭐 있겠나. 불호령도 비난도 두려울 건 없다. 잘못하면 혼나는 게 당연하다. 다만 부끄러운 것만은 싫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팀장님의 표정을 삼켰다.
“수고했어요. 오랜만에 복직해서 업무 방향성을 제대로 잡고 있나 보려고 요즘 일을 많이 시킨 것도 있었는데 고민을 많이 한 게 느껴졌고 방향도 잘 잡았네요.”
준비기간이 길다고, 경험이 많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육아는 늘 임기응변이고 언제 어디서 할 일이 터져나올지 모른다. 해보지 않은 일의 연속이고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의 연속이다. 잘 하려고 준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 닥치는 대로 하는 것은 워킹맘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분유먹이기를 연습해 보고 분유를 먹여보는 엄마가 어디 있으며, 토하고 설사하는 아기 돌보기를 인턴 실습 하듯 해 본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글로 배운 육아와 실제 육아의 괴리를 뼈저리게 느끼며 육아란 표준화할 수 없는 과정임을 이미 체험한 워킹맘은 새로운 업무나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다. 뭘 하든 육아보다 어렵겠나...
전직 KT 신사업 부문장이자 현재 서울대 빅데이터 혁신융합 대학원 객원교수이기도 한 신수정 박사님은 링크드인에서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완료주의자가 돼라’ 는 내용의 칼럼을 올리신 바 있다. 완벽하게 무언가를 해내려고 한다면 - 특히 나같은 의지박약자일수록 -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시간도 체력도 한정적인 워킹맘에게는 무리한 욕심이다. 특히 내가 자신 없는 일일수록 더하다. 한정된 시간에 뭐라도 하나 해보려면 그나마 잘하는 것을 시도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못하는 일이라도 일단 하는 게 중요하다. 워킹맘은 특히나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고 있을 틈이 없다. 일도 육아도 퀘스트를 완료하듯이 해내야 한다. 잘 못하는건 당연하다. 육아와 일은 대부분 그 각각의 업무도 해본 적 없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걸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김연아 선수의 명언처럼 생각은 무슨 생각, 일단 몸이 움직여야 한다. 일단 몸이 움직이다 보면 머리는 돌아가기 마련이고, 잘 못하더라도 일단 계속 하다보면 늘기 마련이다. 슈퍼울트라워킹맘이 될 생각 따윈 없다. 그냥 하루하루 무사히 넘기는 워킹맘이 되고 싶을 뿐.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슈퍼울트라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워킹맘이 되어있을 것이다.
워킹맘 꿀팁 – 뭐라도 해본다
사실 팁이랄 게 뭐 있겠나. 자신없어서 미뤄두고 있던 집안일이나 육아일이나 회사일을 뭐든 하나 시작해 보자. 나의 경우, 아이가 반찬을 통 먹지 않고 매번 던져버리기 바빠 반찬을 한동안 만들지 않았다. 요리를 못하니 뭐 하나 만들려면 한참이 걸리는데 그걸 맨날 오감놀이 하는데 사용하니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사실 애써 만든 음식을 먹지 않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바닥에 집어 던지고 땅에 떨어트리고 하니 치우기가 너무 힘들어 현 타가 왔다. 마침 자신없던 요리를 이 참에 슬그머니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에게 반찬먹는 습관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하셔서 부랴부랴 반찬만들기를 시작했다.
어차피 아이는 잘 안 먹으니 맛있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일단 하는게 중요하다. 없는 솜씨로 열심히 만들어서 주긴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먹지 않는다. 때로는 손으로 만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안 먹는 것 까진 그렇다 치는데 손도 대기 싫다는 뜻인가 싫어 더더욱 현타가 오지만 나는 꿋꿋하다. 하루 내내 굶겨보라는 조언도 들었지만 주고 또 주면 안 먹을리 없건마는 에미가 제 아니 주고 아이 탓만 하더라…
결론 – 그냥 하고, 계속 하고, 다시 한다
“그냥 하는 거예요”
“이봐 책임자. 해 보기나 했어?”
김연아 선수와 고 정주영 회장님의 명언을 떠올리자. 대부분의 의지박약한 우리는 일단 하다가 또 중단하기 마련이다. 작심삼일이 되었다고 스스로를 책망하지 말자. 원래 인간은 나약하고 나는 특히 더 나약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계발의 출발점이고 리더십의 시발점이다. 우리는 모두 약한 존재임을 알기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보았기에 다른 사람의 약점도 감싸줄 수 있다. 내 동료도, 내 아랫사람도, 내 아이도, 내 남편도 모두 약점이 있다. 내 아이의 롤모델이 되고 팀원들에게 포용의 리더십을 보이기 위해 일단 뭐라도 해 보자.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도 포기해도 괜찮다. 그냥 하고, 계속 하고, 다시 하면 된다.
바로 여기, 예시가 있다. 일단 브런치 매거진을 발행하고 보는 워킹맘이.
출처: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