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지 Nov 12. 2018

커피

내 피는 팔할이 커피일지도 몰라

* 이 글은 저의 개인 매거진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다시 읽는 분들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면 절반도 채 마시지 못할 때도 제법 있다. 자그마한 단골 커피 가게가 붐벼 다른 곳에서 사면 여지없이 남기게 된다. 회사 근처에만 커피를 파는 곳이 열 군데는 족히 넘는다. 도장 열 개를 모으면 공짜 커피를 준다는 쿠폰을 곳곳에서 받다가 어디인지 헷갈려 버린 쿠폰만 몇 장인지 모른다. 살 때마다 쿠폰을 찾는 것도 눈치가 보여 나름 단골집을 정했다.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져도 혼란에 빠지니 차라리 스스로의 행동을 제약시켜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커피 한 잔을 위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체험하는 아침이다.

고만고만한 커피숍들이 모여 있으니 경쟁이 붙는다. 가격만 낮춰서는 효과가 없다는 판단에서인지 요즘은 컵 크기를 키우는 데에 주력한다. 크기로 승부하는 곳에서 커피를 샀더니 한 손에 잡기 버거운 것은 둘째치고 혼자 마시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옆자리 동료들과 나누어 마시니 또 다른 따뜻한 아침이 되었다.




가끔은 빵집에서 커피를 사 오기도 한다. 갓 구운 빵 냄새에 홀리듯 들어가도 늘 손에 들고 나오는 것은 갓 내린 커피 한 잔이다. 이 곳의 커피는 너무 쓰지 않으면서 산미가 적고 약간 고소한 끝맛이 남는다. 전속 바리스타가 있어 빵집이어도 여느 커피숍에 뒤지지 않는 커피맛이 보장된다. 커피 수익이 괜찮아서 바리스타를 둔 것인지 바리스타의 역량으로 커피맛이 좋아 매출이 늘어난 것인지 선후관계는 알 수 없으나 소비자는 기쁘게 지갑을 연다.

잠을 깰 요량이라면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그마한 잔에 든 한 모금어치의 액체는 어쩐지 아쉽다. 본연의 쓴맛을 감당할 정도로 커피 애호가는 못 되나 보다. 에스프레소 마니아들에게는 커피맛 나는 물일지도 모를 아메리카노, 혹은 우유거품이 구름처럼 얹혀진 카푸치노가 내게는 아침의 정석이다. 딱 이 정도의 농도, 이 정도의 양이 적당하다. 커피란 모름지기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지속적으로 식도에 보급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그 각성효과가 뇌로 꾸준히 전달되도록 해야 커피의 임무를 다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한 잔의 커피를 수혈받아야 비로소 아침임을 실감한다. 원두를 까다롭게 분간할 정도의 미식가도 아니면서 인스턴트 커피보다는 직접 내린 커피가 뒷맛이 개운하고 입안이 맑은 것 같아 매일같이 몇천 원의 소비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 마신 커피값만 모아도 조그마한 자동차 한 대 쯤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여전히 커피에의 지출을 낭비가 아닌 소비라 생각하는 것은 그 효용이 내게는 자동차보다 크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걸어오는 출근길, 책상 위에서 은은한 향을 내보내는 커피 한 잔의 존재가 주는 친밀함과 안정감. 맑고 청량한 아침은 커피에서 시작된다.


짧게나마 자동차를 소유했던 적이 있다.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주차하다가 차를 긁기도 하고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기도 했다. 다 그것이 익숙해지는 과정인지는 모르지만 그 거대한 쇠붙이가 영 부담스러웠다. 기계가 주는 편리함 만큼이나 거추장스러움과 감당해야 할 몫도 늘어났다. 내 공간지각능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았던가, 주차를 할 때마다 자책해야 했고 매달 나가는 보험료는 은근한 부담이었다. 누군가를 태워줄 때면 혹시나 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책임감에 바짝 긴장하기 일쑤였고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보험 사기단의 표적이 되지는 않을까 마음 졸여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커피를 사러 다시 나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영 마뜩찮았다.



자동차를 처분하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따금 택시를 타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했다. 지하철에서 외국 드라마를 보거나 버스에서 창 밖을 보는 시간은 일상의 감칠맛을 더해주는 조미료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하철 역에서 내려 출근하는 길에, 혹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삶을 충만하게 해 주었다.

내 발로 땅을 딛고 걸어서 회사에 가는 길. 매일 다른 아침공기와 매일의 약속같은 한두 잔의 커피. 하루의 안온함과 만족감은 그 커피 만큼. 위장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중추신경계가 원하는 카페인을 공급해 주는 몇 모금 만큼. 딱 그만큼이면 됐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소중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