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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May 08. 2020

어버이날에 쓰는 어린이날 이야기

5월은 참 뭐가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날이 따뜻하고 꽃이 예쁜 때 아이를 낳겠다는 분이 많았는지 생일도 많다.




요즘엔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주는 게 당연한 것 처럼 되었지만 내가 어릴 땐 외식을 하거나 집 근처 공원으로 온 가족이 소풍을 나갔었다. 어쩌다 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에 다녀왔다던 친구가 있으면 우와~~~ 부러움이 양쪽 콧구멍으로 들락날락 했다.

우리 집은 짜장면을 먹었다. 입학식, 졸업식 처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특식, 짜장면.

엄마는 매 년 어린이날을 "짜장면 먹는 날"로 지정하여 3년이나 6년에 한번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적어도 매 년 먹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소풍을 안 가도, 자연농원에 못 가도 하나 부럽지 않았다.


"어린이날은 짜장면 Day!"

이것은 우리 집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어린이날이면 우리 가족과 동생네 가족이 친정집에 모여 짜장면을 먹는다. 어린 시절과 다른 거라면, 지금은 커다란 탕수육도 시킨다는 것. ^^

지금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짜장면이지만, 이상하게 어린이날 엄마가 사 주는 짜장면은 훨씬 훨씬 훠어~~~얼씬 맛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사춘기 초입에 서 있는 아들과 티격태격하다가 문득 서운함이 올라왔다.


"오늘이 어버이날인데 말 좀 예쁘게 할 수 없어? 꽃도 안달아주고, 편지도 없고......!"


그렇게 말하고 나니 쿵! 마음에 돌덩이가 내려앉았다.

그러는 나는?

나도 엄마, 아빠께 꽃도 안 달아드리고, 편지도 안 썼는걸?

물론 지난 연휴에 미리 친정에 가 봉투를 드리긴 했지만, 왠지 어버이날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않은 부모님은, 발표회 날 다른 친구들 부모님은 다 오셨는데 우리 부모님만 안 와서 잔뜩 풀 죽고 기죽는 것 처럼 어딘지 모르게 부끄럽고, 슬픈 느낌이다.






"아빠, 엄마! 어버이날을 축하드립니다!"


미안한 마음에 콧소리 잔뜩 섞어 전화를 드렸더니 무뚝뚝한 아빠도, 소녀같은 엄마도 목소리가 날아갈 듯 하다. 이게 뭐라고..... 고작 오분 통화한 걸로 이렇게 좋아하신담........


엄마는 어린이날을 짜장면 Day로 만드셨다. 그 시절, 어렸던 나와 동생은 벌이가 시원찮은(오히려 마이너스였던) 아빠 대신 고군분투 하던 엄마의 노고를 몰랐다. 어린이날의 짜장면이 엄마에겐 나름의 큰 이벤트였음을 다 크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나와 동생의 어린이날은 대를 이어 내 아이와 조카에게도 이벤트가 되었다. 엄마는 알았을까? 엄마의 짜장면 이벤트가 이렇게 대를 잇게 될지......


오늘, 내 아이는 내게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단체로 만든 티가 역력한 카네이션도, 카드도 없다. (그게 이리도 아쉬울 줄 누가 알았으랴.)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내 아이는 누구를 비추고 있었나.  

나는 왜 엄마, 아빠께 짜장면Day와 같은 이벤트를 해 드릴 생각을 못했나.

그리 크지도, 그리 대단치도 않은,

소소하고, 평범하지만 가슴 가득 따뜻한.....

이런 생각이 들자 아이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되려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현관 진열장에 놓인 아빠와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저 시절의 아빠와 엄마도 나 같은 딸을 낳을거라고는 절대 생각 못하셨겠지.

애교 없는 딸, 무심한 딸, 뚝뚝하고 뻣뻣한 딸.....

이 무심하고 뚝뚝한 딸은 역시나 무심하고 뚝뚝한 아들을 보며 부모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다정하지 못함에 죄송하다.


다음 번 친정에 갈 때엔 아빠 좋아하시는 고기를 양껏 사가야지. 엄마 좋아하시는 꽃을 한아름 사가야지. 그리고, 아빠와 엄마 앞에서 신나는 노래 한 곡조 뽑아야지.

아빠, 엄마가 손을 휘휘 저으시며


"시끄럽다, 고만 해라!"


하실 때 까지 부르고, 부르고, 또 불러야지.

매 년 이 맘 때마다


"아이고~ 저놈의 지지배 그 때 그 노래 진짜 시끄러웠어~"


두고두고 씹으시게끔 목청껏 뽑아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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