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그림을 좋아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오직 한 명


작은 실수를 한 것뿐인데 세상 끝난듯한 좌절을 느끼며 반. 드. 시 극복하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는 스스로 ‘더 이상은 좌절금지’라고 애써 주입하는 편이다. 작은 실수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일이 사법고시를 합격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난생처음 그림 의뢰를 받았다는 기쁨보다 의뢰자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동안 나를 어두운 지하실속으로 내동댕이 쳤다. ‘그럼 그렇지’, ‘역시 안 되는 거였어’, ‘미술 전공도 안 했는데 무슨’, ‘신이 실수로 내 것이 아닌 기회를 준거야’하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단계를 지나 초월과 회피의 단계로 들어섰다. ‘그림을 사달라고 애원한 건 아니잖아?’, ‘늘 좋아서, 재미있어서 매일 3~4시간씩 그렸잖아’, ‘그리는 동안 정말 행복했잖아, 그걸로 된 거야’ 수없이 되뇌어도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즈음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2018년부터 인스타그램 사용했지만, 처음 받은 다이렉트 메시지(DM)


인스타그램 메인화면의 위쪽 종이비행기 아이콘이 ‘N’을 매달고 반짝이고 있었다. ‘이건 뭐지? 처음 보는데?’ 하고 호기심에 클릭을 했는데 DM이라는 것이었다. 2018년부터 인스타그램을 3년 넘게 사용했지만, DM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DM(Direct Message)은 인스타그램 사용자들과 1:1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기능이다. 싸이월드의 일촌도, 네이트온 메신저의 친구도, 카카오톡 친구도 알만한 누군가와의 소통이기에 전혀 모르는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이 이상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내용을 읽은 후에는 눈 깜빡이는 것을 잠시 잊어버려 매운 눈물이 돌았다. 미술 전공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재밌어서 오랫동안 혼자 그려온 것뿐인데 부러운 실력이라니, 감각을 타고났다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이 정도는 좋아하기만 하면 누구든 그릴 수 있다고, 미치게 사랑을 주었는데, 그만큼을 돌려주지 않아서 미워하기도 하고, 서운해하기도 하며 지내온 세월이었다.

단 한 명이지만 타고났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설마?’, ‘에이, 빈말이겠지’하다가도, 입꼬리는 씩 하고 광대뼈까지 올라가고, 두 눈은 반짝, 초롱해지고, 구름 위를 걷는 기분까지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사람에게 두 번째 DM을 받게 되었다. 누군가 잘 짜인 각본대로 진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신기한 일이었다. 이날 이후로 DM이 전혀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인물화 작가로 가는 길을 알려준 두번째 다이렉트 메시지(DM)

그토록 설렜던 인생 첫 그림 의뢰 이야기는 조금은 비극적으로, 마치 잡월드의 ‘화가의 작업실(Artist’s Studio)’ 을 매우 리얼하게 체험했던 것처럼 끝이 났다. 마음속으로 그저 견학 한번 해본 것뿐이라 체념하고 있을 때 받은 메시지였다.

두 번째 DM 속 ‘작가님’이라는 단어는 나를 다시 설렘 속으로 던져 넣었다. 작가라는 단어는 내 삶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낯설고, 어색하고, 멀고 먼 다른 세상의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될 수 없음을 직감하기에, 바라지 않으니 되기를 시도하지도 않는 것이라 보호막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생에 두 번째로 받은 DM에서 ‘작가님’이라 불리는 순간 숨이 차듯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가슴이 떨리고, 두근거렸다. 진정으로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오래전에 본 제목이 기억 안나는 영화의 결말이 현실이 된 느낌이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오랫동안 보물을 찾아 해 맨 후 탑 꼭대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지만, 꺼낼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바라만 본다. 그러다 우연히 손을 뻗었는데 탑 천장이 조금씩 머리 위로 내려와 마침내 손을 뻗어 보석을 얻게 된다는 결말이었다.


어쩌다 보니 6개월의 휴직기간이 남아있다. 그리고 아이디어스(idus) 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작업실이나 공방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인물화 작업을 위해 특별히 뭘 더 준비할 필요도 없다. 평소 모자란 실력은 장비 도움을 받자 주의라 고품질의 종이와, 선명한 발색, 혼색하기 좋은 132색 프리즈마 색연필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핸드메이드 제품만을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온라인 주문, 전용 메신저 소통, 완성된 그림의 택배 발송까지 작가 활동을 위한 모든 단계가 나를 위한 것 같았다. 단 한 번의 대면이나 전화통화 없이 작가 활동이 가능하니 말이다. 이보다 나와 잘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싶다. 이제 머릿속은 온통 아이디어스 생각뿐이다. 단 한 명이라도 내 그림을 사준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돌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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