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원 Feb 14. 2021

이별 VS 이별 공포증

자유의 또 다른 이름, 책임은 내가 내게 주는 최고의 관용이었다.


‘불편하다’는 ‘귀찮다’와 같은 갈등인 걸까? 불편한 자극을 직면할 때마다 어떤 반응을 할까 늘 고민이었다. 때때로 나를 일깨우기도 하는 불편함은 고약한 패턴을 끊게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해하기 불편해서 그만 실제를 놓아버린 적이 많았다. 선택의 대가는 지독했다. 뭘 그리 이해가 필요하다고 쉽게 외면했는지. 나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선택하는 자유는 언제나 큰 책임을 수반했다.


나는 치졸한 바닥을 보이는 기억과 상념이 엉키고 겹쳐 힘이 빠졌다. 엉망인 기분과 연결된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얼마나 오래 문지른 걸까? 명치 주변이 시퍼렇게 멍든 것도 모른 채 상념에 잠겼다.


그와는 아무 연락도 없이 열흘이 지났다. 나는 온종일 팟캐스트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온갖 방송을 떠돌다 우연히 ‘에니어그램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성격 유형 심리재미있고 심오하게 풀어가는 방식이 신선했다. 들을수록 솔깃하고  많이 알고 싶어 졌다. 다양한 정보를 찾다 에니어그램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했다. 그곳에서 남다른 통찰력과 오라가 느껴지는 에니어그램 전문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의 스타일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했을걸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사랑을 못 건 아닐까…

극단적으로 결정하기엔, 후회가 될까 싶은데요. “

 

네???

성격차지쳐 헤어진 게 아니라고요?”

 

“본인이 원하는 사랑에 그를 껴 넣으려 하니, 그 누가 맞을 수 있을까요?

그건 서로 맞춰가는 게 아니랍니다.

일방적으로 욕심이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사랑이고, 아니면 사랑을 못 느끼고 그건 그의 잘못도 아니죠.”


“아. 그건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그를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그저 단아하게 그를 바라볼 참한 여인을 만나면 되는 거고,

저는 저를 그리워하고 궁금해하고 이것저것 다 알고 싶어 하는, 저를 일 순위로 두는 남자를 만나면 되는 거잖아요.

맞지도 않는 성향으로 애쓰면서… 그건 아니잖아요?”

 

조금도 무슨 말인지 들으려 하지 않는군..

서로 맞지 않다는 말이...

진실을 보려고 했나요?

제대로 그를 인정해 보셨나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이별했다고 생각했다. 돌이킬 수 없다고. 후회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건,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우리 관계가 운명이라고 여겼기에 계속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리면서까지 가야만 한 걸까? 환상의 대가로 치른 희생이지 않았을까… 나 자신이 초래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건지, 역설적인 내면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


이별은 어쩌면  다른 선택이다. 잘못을 되돌리는 선택이며, 다시 행복해지는 새로운 기회이다. 더 나은 길이 있는데도 불행을 참고, 헤어짐을 미루는 것이 오히려 자기 인생의 기만이지 않나. ‘이별’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 공포증’이 지금의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


왜 그렇게 노력이란 걸 했을까? 왜 이토록 이상화하려 한 걸까? 우리 관계가 ‘진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진흙 위의 생크림’처럼 ‘가짜’로 범벅된 것도 몰랐다. 나의 욕구와 감정을 알아차려야 할 때, 나는 회피했다. 나 자신을 방치한 도피의 방식은 어디에서 왔을까?


“사랑은 진정으로 자신의 가슴과 연결될  때 알 수 있는 것.”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 외면한 걸까? 누가 감히 날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버린다고 버려지나? 죽는 것도 아니잖아? 고작 실망하고 떠나는 건데. 떠나면 어때? 떠난다고 죽나?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거지, 죽는 게 아니잖아…. 이 바보야!!!


나의 가장 소중한 목숨이 고작 감정에, 바보 같은 생각에 허우적거리다니! 더 이상 매몰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삶, 이 순간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관계를 택하지 않은, 거절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니! 모든 건 나의 선택으로 비롯되었다. 선택은 자유를 의미했다. 자유의 또 다른 이름, 책임은 내가 내게 주는 고의 관용이었다.


심리 상담가 조언대로 마주친 현실을 다시 되짚어 봤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자는 말에 그는 선뜻 동의도 해 주었다!


납이 되어 녹슬고 희미해져 간 나는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나는 에니어그램을 공부했다. 그와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연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동안 헤어짐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연애로 나는 다시는 울지 않으리.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전 18화 착각 & 환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