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원 Feb 15. 2021

3번 유형 여자 & 5번 유형 남자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삶이 참 외로웠다고 여겼는데. 새삼 나에게 연민이 느껴지면서 관대해졌다.


형제자매도 생각이 달라 서로 오해하기 일쑤다. 내 뱃속에서 나온 세 아들은 또 어떤가? 달라도 이리 다를까 싶다. 쌍둥이도 예외는 아니다. 하물며 70억 인구 모두 생각, 취향, 반응 또한 제 각각인데, 어떻게 인간을 9가지로 나뉠 수 있다는 거지?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에니어그램’을 접하였다.


누군가를 알기도 전, 어림짐작과 설익은 추론에 이르기도 하였다. 굳이 부작용이라면 선입견이 생긴다고 할까? 하지만 행동을 결정짓게 하는 이유와 반응의 동기가 헤아려져서 좋았다. 다름에 의문을 갖는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는 확실이 도움이 되었다. 


에니어그램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힘을 본능, 감정, 이성 세 가지로 나눈다. 이 세 가지가 다시 억압이나, 몰입, 무시로 세분화해서 총 9가지가 된다. 나는 이론의 디테일에 심취할수록 매료되었다. 인간의 내면, 본질에 다가가는 영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심오한 철학마저 담겨 있는 게 아닌가.


1번부터 9번까지 에니어그램은 쉽게 번호로 부른다. 나는 3번 유형이다. 감정형이지만, 여느 감정형과는 다르게 감정을 무시한다. 그래서 '나는 차갑게 보였던 거구나!' 그는 5번 유형으로 이성형이다. 딴 이성형과 남다르게 몰입한다. 여기서 몰입은 내면세계에 푹 빠져서 모든 감정과 본능을 이성으로 처리하는 걸 말한다. 이 정도의 접근만으로도 같은 상황에서 나는 왜 그렇게 말했으며, 그는 왜 그리 반응했는지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게 고단한 줄도 모르고 또 버려졌다고 슬퍼했어.

두 시간 정도 문자를 확인하지 않거나, 답이 없으면 아직도 불안하고 속상해.

물론 날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소통하다가 갑자기 멈출 때  (급한 일로 그런가 보다. 곧 확인하고 답 주겠지.)

얼마나 피곤하면 답을 못하는지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에구, 미안해.

걱정할까 봐 늦더라도 연락하긴 하는데,

어느 정도 확인하지 않거나 답이 없으면 불안하고 속상하구나."


“성적 본능이 맹점인 당신은 연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걸 깜빡 한데.

반대로 난 오로지 연인이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에만 관심이 있데.

신기하지? 우리는 완전히 갈등의 극점인가 봐요.”

 

그러게 본의 아니게 내가 주로 맘 편하게 있네”

 

나는 1차가 성적 본능이다. 사랑할 때만이 ‘존재 이유’라는 나의 가치관과 딱 맞아떨어진다. 일찍 결혼해 연애 경험이 없어 유독 사랑에 목마른 줄 알았다. 나 말고도 무수한 사람이 성적 본능 유형이라니… 마음이 놓였다. 죽을 때까지 사랑타령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내 본능에 따라 살다 죽는다는 것이 주책도 아니고, 더욱이 숨길 일도 아니라는 게 어딘가!

 

그는 성적 본능이 나와 반대로 맹점이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의식하지 않으면 연인관계에 놓치는 게 많은 유형이다. 그의 1차는 사회적 본능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보다 더 큰 존재, 즉 단체나 사회와의 연결이 가장 중요하다. 심포지엄이나 전시회에서 그는 존재감을 느낀다. 핸드폰과 컴퓨터가 그의 놀이터다. 수시로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그곳에서 에너지를 주고받는 거였구나.


(좀 더 설명을 하자면) 인간은 생존본능에 의해 살아간다. ‘생존본능’은 말 그대로 생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본능에 의지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삶에서 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부분에 직면하게 한다.


에니어그램에서 일컫는 ‘본능’은 자기 보존, 사회적, 성적 세 가지로 분류한다. 세 가지 중 대부분의 사람은 두 가지를 혼합해서 사용한다. 이때 나’를 무엇으로 인식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본인의 유형을 찾을 수 있다.


자기 보존은 내 몸을 나라고 인식하고, 사회적 본능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나, 성적 본능은 몰입하는 상대와 나를 동일시한다. 세 가지 중 가장 강한 것이 1차 본능이고, 그다음이 2차, 가장 약한 것을 3차, 맹점이라 한다.


나는 1차가 성적이고, 2차로 자기 보존을 사용한다. 그렇기에 대상(파트너)과의 집중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 나의 안전과 보호가 중요하다.


사회적 본능 유형인 그는 집단과의 연결이 가장 중요하기에 자기보다 단체를 위해서 개인의 이익을 희생한다. 때문에 타인을 향해 확장하고, 그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에 너그럽다.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매우 예민하게 알아차리기에, 사회적으로 거부당한다고 느낄 때 아주 고통스럽다.  그도 언젠가 강연회에서 본인이 한 얘기로 청중이 상처 받지 않을까? 하고 매우 힘들었다고.


성적 본능이면서 3번 유형에 해당되는 나는 파트너를 확보하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매우 감정적이었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일에 몰두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슬퍼한 내가 갑자기 일이 생기면 아무 감정 없이 그 일을 끝내곤 했다. 이럴 땐 나도 나를 참 모른다고 생각했다.


‘와우, 나 같은 사람이 이 지구 상에서 3번 유형으로 살고 있구나’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신기하고 반가웠다.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삶이 참 외로웠다고 여겼는데. 나처럼 느끼고  반응하는 같은 알고리즘을 가진 사람이 3번 그리고 성적 본능/자기 보존 유형으로 살아가고 있다니! 새삼 나에게 연민이 느껴지면서 관대해졌다.


나는 그의 무릎 위에 포개고 앉아 마주 보며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그를 껴안기도 자연스러웠다. 더구나 서로의 사타구니가 밀착된 느낌이 야릇해서 좋아했다. 이런 포즈는 에로틱한 상황으로 이어지곤 하였다.


그가 키스하면서 내 등과 머리칼을 부드럽게 매만질 때, 나는 그의 두 손을 내 가슴으로 옮겼다. 그의 두툼하고 큰 손에 가득 찬 내 젖가슴을 그가 거칠게 주물럭거릴 때 나는 한없이 사랑받는다고 느꼈다.


게리 채프먼의 ‘사랑의 언어’ 책에 의하면 나의 사랑의 언어는 스킨십이다. 그의 사랑을 느끼고 싶을 때, 종종 그의 무릎에 올라타곤 했다. 애무 없이 대화만 길어지면 내 무게로 숨쉬기 답답하다며 그는 옆으로 앉으라 했다. 


왜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 에니어그램 수업 중에 알게 되었다. 성적 유형인 나는 호시탐탐 파트너를 매혹하려 하고, 그는 때때로 나를 밀쳐냈다. 상대가 파고들 수 있는 틈을 주지 않는 게 사회적 유형이다. 사회적 역할을 잠시 치워두고 누군가에게 빠져 이끌려간다는 것이 과하다고. 낭만적인 관계를 바라지만, 쏠림의 노예가 되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정황을 두려워한다고. 유혹에 대항하는 이성적인 힘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아, 그래서 종종 거부했던 거구나!


이것을 알게 된 이후, 소파에 앉은 그의 허벅지 위에 내 엉덩이를 바싹 밀착하고는 말을 걸지 않았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윽한 눈으로 그의 눈동자와 입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살짝 그의 동공이 풀리려다 정신을 붙들려할 때, 나는 입을 열었다.


“안돼! 정신 차리지 마! 그냥 날 느껴봐.”


소용없었다. 이성적인 선택에 의해 무시되고 기각되고 말았다. 우리 둘만 있는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본능인 이 인간을 유혹하려면 섹스씬이 나오는 야한 영화를 보거나, 와인 밖엔 별도리가 없었다. 강렬한 화학작용을 돋우려면 술과 다른 활동을 통해서 불을 지피는 걸로!


아마도 황진이는 나처럼 성적 본능이고, 꼬임에 넘어가지 않은 서경덕은 사회적 본능이었을 것이다. 비에 젖어 더 아련하게 비친 그녀의 자태를 보고만 있었다니! 이놈의 인간은 지독한 사회적 본능 이리라.

이전 19화 이별 VS 이별 공포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