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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원 Feb 20. 2021

교차로

어차피 공감할 수 없다면 배려의 문제였다. 배려는 차이를 인정하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다.

 

요즘 그는 부쩍 굿 나이트 인사를 잊고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잘 잤어?

어젯밤에 연락 못했네. 미안.

흐리고 비 오고. 오늘도 하루 종일 촉촉한 하루가 될 것 같다.

편안하고 여유 있는 하루 보내.”

 

미안하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고단해서 또 잠들었나 보다.

짠~~ 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물론 아직은 ‘잘 자’라고 해주고

당신이 보내온 이모티콘을 보며 행복을 느끼지만…

분명한 건,

신뢰와 사랑에는 더 이상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

가벼운 감정의 동요일 뿐.

정~말 괜찮아요!”

 

그렇게 말해줘서 나도 고마워.”

 

어느 금요일 저녁 그의 친구들은 그의 집에 모였다. 다음 날 골프 치러 전남에 가기 위해서였다. 나라면 금요일엔 애인이랑 보내고 토요일 새벽에 출발할 텐데. 그는 내가 아닌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이해가 안 되었다. 골프 치는 내내 연락도 자주 하지 않았다. 어쩌다 그것도 늦게 보내온 문자에,

 

살아있구나!!! 오늘도 신나게 보내!”라고 쿨한 척 경쾌하게 보냈다.

 

함께 보내기로 한 주말이 계속 미뤄졌다. 친구 커플과 함께 떠나는 골프여행도 금요일이 아닌 당일 일요일에 픽업했다. 3주 만에 보는 거였다. 금요일, 아니 토요일 하루만이라도 그와 회포를 풀고 싶었다. 나의 바람은 무너졌고, 그날도 친구들과 함께 있느라 늦은 밤 우리는 자는 둥 마는 둥 그랬다. 그다음 날 그는 친구들과 골프를 치고는 바로 날 바래다주었다. 오후에 줌 화상 미팅이 있다며 급히 떠났다.


친구들이 먼저이고, 예술 문화 증진에 헌신하는 것은 더 먼저이고, 나는 늘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이것을 받아들인다. 그러지 않았던 지난 세월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 어차피 공감할 수 없다면 배려의 문제였다. 이해가 불가한 서로 다른 생존 본능을 가진 우리가 언제까지 공감한 척한단 말인가? 척은 지속이 힘들다. 배려는 차이를 인정하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포함해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대부분은 감각, 감정, 욕망이라고 불리는 매우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다. 본능이 같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을까? 우리처럼 정 반대가 나을까? 비슷하다면 갈등은 덜 하겠지. 하지만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신선하고 발전되는 우리 관계가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다른 한 편으로 이렇게도 생각하고 싶다.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한동안 괴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전체적으로 대가보다 보상이 크다면? 어처구니가 없는 보상을 위해 소중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서로 상반되는 취향과 욕구의 조화라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 인지부조화처럼. 사실 이것은 연애뿐만 아니라 삶의 다채로움이랄까? 풍부한 경험으로서 인간이 갖춰야 할 핵심자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다면, 우리가 동물과 뭐가 다를까? 인간의 고유한 문화, 예술, 철학, 존엄성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창조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간이 약이다” 진리처럼 여겼던 말.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나 자신이 바꾸어야 해결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선택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욕구-그래야만 한다는 기준-를 내려놓는 행위, 진정한 포기를 의미했다.


전에도 다짐하고 노력을 했다. 지금은 체념과 상실을 더 이상 동반하지 않는다. 숨 막히는 옷을 입고 얼마 못 가 그 옷을 벗어던진 그때와는 다르다. 알아차리고 포기하는 것밖에 없다. 아니 이 방법이라도 있다는 게 어딘가!


보고 싶다고 말해 주는 달달함에 활기를 느끼는 나의 유전학적 버릇, 로맨틱한 습관에 반하는 도전을 해 보았다. 남자 친구의 부재로  외로움과 무기력, 일상에서 오는 지루함에 용기를 내 본 것이었다.


모든 지점은 교차로였다. 이럴 땐 차라리 휴리스틱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바다는 메울 수 있어도, 여자의 마음은 채울 수 없다.’ 뭐 이런 문구. ‘사랑하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 Never!!! 절대로 부족하다.’ 이런 내용의 유튜브 보는 재미가 새로웠다. 또 인터넷 카페에 5번 남자에 대해 써 논 글을 읽으면 더없이 느긋한 마음이 들었다.


나 같은 성적 본능이면서 외향적인 에너지를 가진 여자를 보고, 5번 남자 왈,  


“이런 하이텐션 에너지를 내가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생겨서 직접적으로 ‘이 사람에게 마음을 줘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곁에 계속 머물지, 떠날 사람일지, 확신도 안서고요…”


어디서 많이 듣던 말 같은데? 더 찾아봐야겠다. 그러다 5번 남자랑 결혼에 골인 한 어떤 여자가 말하길,


“천천히 공동 관심사로 서서히 스며드셔야 할 듯. 확신이 들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어요.”


그도 내가 신기록 깼다고 이렇게 빨리 사귀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 게 생각이 났다. 그러면 뭘 해? 아직도 관찰하고 있고, 난 여전히 그에게 스며들지 못하고 있는데…


또 다른 5번 사회적 본능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뭔가 시그널을 보내게 된다면 부담스러움을 느낄 수가 있어요. 워낙 에너지가 없으니까 에너지 많은 분들이 좀 많이 어렵네요.”


한 번 호기심이 발동하면 끝장을 보는 나였다. 그 부정적인 멘트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MBTI! 그는 내향적 사고형 INTP이다. 나는 외향적 감정형 ESFJ이다. 놀랍게도 여기 MBTI에서는 우리가 상반되지만 천생연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 상반되기 때문에 늘 새로운 거야, 어디 한번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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