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각박'하지 않기
각박: 인정이 없고 삭막하다
20대의 나는 나에게 참 각박했다. 나에게 인정이 없고 야박했으며, 그로 인해 내 일상은 삭막했다.
2015년, 동생과 둘이 떠나는 첫 해외여행
동생은 혼자서 유럽여행 후 나와 합류하는 일정이었다. 당시,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던 회사에 다니던 나는 연휴와 붙여 2주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했다. 밀라노 - 베네치아 - 피렌체 - 로마 순으로 이탈리아 북에서 남으로 훑으며 내려오는 코스였다.
6월 말, 여름이 오기 전이라 방심했던 우리는 이탈리아의 더위에 KO 당했다. 이상 기후로 인해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이탈리아는 연일 사상 최고의 기온을 기록 중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더운 남쪽으로 향하는 일정. 마지막 여행지인 로마에서는 전력 수급량이 허덕여 정전까지 일어나는 사태를 겪었다.
내가 기억하는 이탈리아는 참 더웠고 평소 파스타, 피자를 좋아해 이탈리아 여행을 누구보다 기대했던 나는 더운 날씨에 그리고 너무 짠 음식에 실망을 금치 못 했다.
로맨틱한 도시, 피렌체에서 더 기억에 남는 건
그렇게 여행 중간 지점 당도한 피렌체. 나는 이탈리아의 네 도시 중 피렌체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핑크빛 일몰과 함께 피렌체 시내 중심의 광장에서 울려 퍼지던 아름다운 바이올린 현악기. 왜 피렌체가 낭만의 도시인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피렌체를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티본스테이크.
티본스테이크의 원조가 피렌체라고 들었는데 역시 원조가 잘하더라.
한창 궁상 시스터즈였던 우리는 티본스테이크 하나와 샐러드를 시켜 나눠 먹었다.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던 스테이크. 그 이후로 여행 내내, 아니 지금까지도 1인 1 티본스테이크 먹을 걸 후회한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무조건! 1인 1 티본 하라고 추천한다.
20대의 나의 소비의 기준은 돈이었다
말 그대로 가격이 나의 결정 기준이었다. 늘 아끼고, 장학금을 받으려 애쓰고, 알바를 해서 용돈을 벌고. 속 깊은 첫째 딸의 숙명인지 K-장녀로서 나는 나에게 늘 각박한 사람이었다.
한창 꿈 많고 도전해 봐야 할 20대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탐구할 시간 없이 아니 여력 없이 나에게 가장 야박했다. 조금의 허영도 낭비도 허용하지 않고 나를 절제했다.
방향 없이 치열했던 삶은 30대에 와서 허무함을 남겼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나는 어떤 색깔의 사람이지? 그제야 나를 돌아봤다.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고 그 습관은 무섭게도 나를 제한했다. 이제는 사회생활도 해서 어느 정도 돈을 써도 되는 나이임에도 늘 무섭게 숫자가 가장 먼저 기준으로 다가오려 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금액의 것은 소비를 꿈꾸지도 않지만.
이제는 희소성, 이후에 이 시간에 다시 경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희소성에 초점을 맞춰 소비하려 한다.
그리고 조금은 나에게 더 관대하고 나와 친해지려 한다. 나는 어떤 걸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탐구하며, 평생을 함께할 사람은 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