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이 이렇게나 무섭다
밥심: 밥을 먹고 나서 생긴 힘
호주에서 지낼 땐 참 춥고 배고팠다
외로움인지 고달픔인지 타지 생활로 인한 허기는 밥으로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호주에 가자마자 홈스테이에서 만난 친구 마미(Mami)는 나보다 8살이나 많은 언니지만 호주에서 만나 영어로 대화하며 친구가 되었다.
취업을 위해, 더 나은 직장을, 성공을 위해 이 악물고 어학연수를 온 나와 달리 마미는 자신의 힘으로 영어를 단순히 취미로 배워보고 싶어서 직장을 잠시 쉬고 호주로 왔다.
친구 이상의 가족
어학연수 기간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마미다. 홈스테이를 함께 지낸 기간은 3개월로 짧았지만 같은 어학원에 다니고 있었고(반은 달랐지만) 홈스테이를 나오고서도 마미는 연수 시절 내 든든한 가족이었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어렵게 연수를 왔던 나는 배고픈 유학생이었다. 마미와 종종 안부를 물으며 만날 때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가 좋아하는 초코 도넛, 헝그리 잭(호주에서는 버거킹이 헝그리 잭 브랜드이다)을 사주었고 나는 눈물을 흘리며 배를 채웠다.
그 친구가 선물한 것은 단순히 밥 한 끼가 아니었다.
배고플 때, 힘들 때 내 입장에 돌아보고
가장 힘이 되는 선물을 한 따뜻한 마음이었다.
나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마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의 이름처럼 마미는 정말 내게 제2의 엄마 같은 따뜻한 품을 내주었다.
호주를 떠나기 전 마미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하고 싶어, 같은 반 아는 일본 친구에게 ‘나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를 일어로 물어 연습했고 마미에게 ‘私の友人でいてくれてありがとう’라고 말한 순간 마미는 눈물을 흘렸다.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일본인들은 주로 속내를 보이지 않고, 밥뿐만 아니라 모든 지출에 대해 1/n 한다고 들었었는데 마미도 다른 부분에서는 철저했으나 나에게만은 늘 더 후했다.
각자 연수를 마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서도 처음엔 마미가 언니와 함께 서울을, 그리고 다음엔 내가 혼자서 마미가 있는 오사카로 놀러 가며 인연을 이어갔다.
마미에게 배운 그 따뜻한 마음을 나도 배고픈 후배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을 사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밥을 내가 사려 한다. 특히, 후배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