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보고 드는 소회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어쩌면 평년보다 좀 더 빨리 찾아온 것 같다. 갑자기 올라간 기온에 봉우리만 올라오던 꽃들이 활짝 만개했다. 분명 지난주 공원에 갔을 때만 해도 봉우리였는데 오늘은 만개 후 심지어 꽃잎이 많이 떨어진 벚나무들도 보였다.
봄이 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지표가 벚꽃인 것 같다. 오늘 아침 동네 큰 공원(나름 벚꽃 명소)으로 홀로 벚꽃 구경에 나섰다. 벚꽃은 참 눈송이 같기도 한 게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 잎을 맞으면 그렇게 가슴 한 켠 몽글몽글한 행복이 올라오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바람마저 찬기를 벗고 시원했다. 그렇게 공원을 걸으며 다양한 벚나무들을 눈으로 담고 있는데, 여기저기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노부부.
거동이 불편한 다리이지만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
30대인 나에게 벚꽃은 봄이 왔다는 신호이지만 저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생애 마지막 벚꽃일지도 모르는, 빨리 져버려 더 찬란한 지금 이 계절을 사랑하는 사람과 놓치지 않고 켜켜이 나누는 것.
젊은 커플들도 예쁘지만 요즘 들어 내 마음을 움직이는 건 주름진 손을 맞잡은 노부부이다. 간혹 전철을 갈아탈 때나 산에서도 볼 수 있는데 손을 잡고 다닌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 둘의 끈끈한 사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스킨십인 것 같다. 많은 세월 풍파를 마주하면서도 끝끝내 놓지 않은 손. 결혼에 대한 큰 환상은 없지만 만약 결혼을 한다면 그렇게 늙어서도 내 손을 잡아줄, 내 못난 부분도 옆에서 묵묵히 목격하고 같이 걸어줄 동반자였으면 하는 게 결혼에 대한 내 로망이다.
20대 초반엔 늘 중간고사 기간이 벚꽃 피크 시즌이라 한 번도 만개한 벚꽃을 구경하러 가지 못 했다. 20대 후반엔 한 번은 진해로 벚꽃놀이를 갔었는데 밤새 차로 달려 동네 허름한 목욕탕에서 씻고 아침 8시에 진해 여좌천을 걸었다. 사람도 없고 진해 벚꽃은 서울 것과 달라 알이 더 크고 더 분홍색이 진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운전은 내가 하지 않았지만 피곤해서인지 더 달콤한 꿈처럼 느껴졌다. 30대의 벚꽃은 현실이다. 여의도에 있는 호텔에 근무했던 나는 윤중로가 정말 가까워 점심시간에 벚꽃을 보고 온 적도 있었지만 벚꽃을 보러 오는 손님들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에 벚꽃이 마냥 예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여유롭게 홀로 벚꽃을 보며 그래도 그때그때 벚꽃으로 인해 다양한 봄이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이 떠오른다는 것이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 그 이상인 느낌이다.
누군가에겐 생애 마지막 벚꽃일 수도 있는 핑크빛 팝콘. 빨리 져 버려 더 아름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