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도 양복감과 초록 옥반지
나의 대모님은 대학은사님이시다. 결혼할 사람이라고 남편과 인사를 드리니 나보다 남편을 더 맘에 들어하셨다. 나는 종교가 없었는 데 구교 집안인 시댁에서 세례를 받기를 원하시니, 명동성당으로 데이트 겸 교리공부를 하러 다녔다. 얼마나 건성이었는지 우리의 수업태도를 본 수녀님께서 결혼을 하면 봐주고 그렇지 않으면 세례를 안 주겠노라 엄포를 놓으시기까지 했다. 세례 받는 날 시어머님께서 옛날엔 흰 한복을 입었는 데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흰 원피스를 입으라고 선물해 주셨다. 대모님이 되어 달라는 청을 교수님은 흔쾌히 들어주셨다. 결혼식에서는 축복의 폭풍눈물을 흘리시기도 한 대모님은 어느 날 우리를 불러 자줏빛 비로도 양복감을 주셨다. 좋은 옷감이라며 남편더러 양복해 입으라셨다.
대모님은 초록색을 좋아하는 소녀 같은 심성을 지니신 분이었다. 우리가 너무 예뻐 5명의 내 후배들의 대모님이 되어주시기도 했다. 어느 날, 초록색 옥을 주시며 대모님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끼자 하셨다.
자줏빛깔이라 양복을 못 해 입고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신혼 때 손가락 굵기라 이제 맞지 않는 반지가 되어 버렸다.
두 개를 놓고 사진을 찍고... 전시회에 대모님을 모셨는 데 40대였던 대모님은 이제 70대 할머니가 되시고 걸음걸이도 자유롭지 못하시고, 아!!!! 비로도 옷감과 반지도 기억을 못 하신다. "손님들도 주고 너도 먹어" 하시며 예쁜 보자기에 싸 오신 떡을 하나 꺼내 내게 주시는 데, 눈물 콧물 이 노릇을 어찌할꼬...
몇 십년이 지나도 예쁜 자줏빛 비로도 양복감과 초록 반지는 언제나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게 해준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