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나는 자식이 아니었을까?
“야, 너만 애 키우냐.
힘들어 죽겠는데 왜 문을 이렇게 늦게 열어….”
낯익으면서도 낯선,
짜증 가득한 목소리.
순간, 오래 묵혀 있던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 갔다.
엄마가 오기로 한 날이었다.
찰떡이가 계속 하품을 하길래
10분이면 잠들 거라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기 전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찰떡이가 막 잠들려는 순간,
방 밖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왜 이렇게 문을 안 열어! 뭐 하는 거야….”
찰떡이가 깰까 귀를 막아가며 재우는데,
묵혀 있던 감정들이 같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달칵—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애 재우느라… 많이 기다렸지?”
시계를 보니 약 10분이 지났다..
미안한 마음이 들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친정엄마도 아이를 키웠던 사람이니
조금은 이해해줄 줄 알았던 건 내 욕심이었을까.
그 말투를 듣는 순간,
내 안에서 오래 눌러 두었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예전에 주고받았던,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날 선 말들이 떠올랐다.
‘지 애만 귀한 줄 아냐.’
‘내가 무릎도 안 좋은데 여기까지 온 걸 생각이나 해봤어.’
그 목소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귀하지 않은 자식인가.
내가 귀하지 않으니, 찰떡이도 귀하지 않은 걸까.
우리집 바로 앞에 카페가 있어서
잠시 거기서 기다리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내 이기심이었을까.
남편과 오랜만에 크게 다투고
마음이 허해져 있던 날이었다.
그런 마음을 기댈 누군가가 필요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걸지도 모른다.
“잘… 지냈어?
아픈 데는 없고?”
서로 어색한 웃음을 섞어가며 몇 마디를 나눴다.
가족이라기엔 너무 낯설었지만,
그래도 ‘엄마’라는 존재를 찾은 건
지친 마음이 기댈 곳을 원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아파트를 오가며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푸념을 나누고, 위로를 받으며 지내는 다른 엄마들을 보면서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혼자 수술과 육아를 해야 했던 내 상황이 더 외롭고 슬펐다.
그렇게 이루어진
어색한 우리 모녀의 재회는
불과 두 번 만에 다시 이별로 끝났다.
찰떡이가 생긴 것도,
태어난 것도 알지 못했던 나의 엄마와 아빠.
나는 그저
‘나 이렇게 상처받았어’라고
내 부모에게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이라는 숫자와 상관없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동생 결혼 준비 중
난 엄마와 크게 다퉜고, 그날 이후 가족과의 연락을 끊었다."
엄마가 나에게 한
“넌 나에게 남편 같은 존재였어.”
라는 말은
평생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였지만,
마지막에 엄마는 늘 동생의 손을 잡았다.
엄마에게 나는 ‘남편 같은 딸’이었고,
동생은 ‘아들’이었다.
어떤 순간에도 바뀌지 않는 위치.
창문을 열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들어온다.
밖의 풍경은 화사하고 온기가 가득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늘 겨울 끝자락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