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싱클레어와 콜필드가 행복하기를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 -
헤르만 헤세는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데미안>을 출판한다. 재밌게도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명성이 아닌 작품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헤르만 헤세는 숨어서 글 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하긴 그것만큼 재밌는 일도 없긴 하다).
하지만 그의 이중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 작품은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표 없이도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이후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이름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그 일이 있은지 100년이 지났고, 지난해 데미안 출간 100주년 기념 오리지널 초판본이 발간되었다. 저자가 에밀 싱클레어로 표시되어 있는 책의 표지를 보니, 너무 예뻐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을수록 소설 속 인물인 데미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책의 제목은 데미안인데 주인공은 데미안이 아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방황하는 어린양 싱클레어다. 모든 것이 서툴고 어설픈 싱클레어에 비해 데미안은 모든 것이 어른스럽고 모든 것에 능한 애늙은이 같은 소년이다.
소설 속 데미안을 보면서 학창 시절 동경했던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조용했지만 뭔가 아우라가 있었고, 어린아이의 어설픔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어린 나이에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깨닫고 세상을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 데미안도 그랬다. 싱클레어가 크로머의 괴롭힘으로 죽을 만큼 힘들어하고 있을 때, 데미안은 눈치만으로 상황을 알아챈다.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거야.
- 데미안, 헤르만 헤세 -
그리고 야비한 크로머를 단번에 제압한다. 유치한 어린아이의 방식이 아닌, 어른처럼 우아한 방식으로.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데미안이 싱클레어가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 상상해보았다.
항상 어설프고 방황하는 자신에 비해 어른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어른스러운 아이 데미안, 싱클레어는 항상 데미안의 흔적을 좇고 그처럼 되고 싶어 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자아라면, 데미안의 어머니는 싱클레어의 이성적 이상향이 아닐까?
싱클레어의 이상형인 베아트리체가 현실 속 완벽한 여인인 데미안의 어머니로 표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싱클레어는 끊임없이 고뇌하며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상을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 한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 -
여기 방황하는 또 다른 소년이 있다.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문제아 홀든 콜필드다. 콜필드는 어쩌면 싱클레어보다 더 방황하는 사춘기로 보인다. 그는 첫 등장부터 퇴학을 당하고, 낯선 뉴욕의 뒷골목에서 어른들의 세계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의 이상향이 데미안이었다면,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콜필드가 꿈꾸는 것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콜필드가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만난 사람들은 위선적이고 비열한 기성세대들이다.
기성세대들의 위선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을 그리워하게 되고,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한다.
내가 할 일은 누구든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붙잡아 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럴 때 내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온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 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지.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런 거야. 바보 같은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 호밀밭의 파수꾼, JD샐린저
싱클레어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다면, 콜필드에게는 여동생 피비가 있어 다행이다.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콜필드에게 맑고 순수한 피비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어쩌면 바보 같을 수 있는 소원을 열심히 들어주는 단 한사람,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인 크리스마스 용돈을 오빠의 손에 쥐어주는 어린소녀, 어쩌면 피비는 콜필드가 가진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이면을 투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데미안>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공통점은 소년들의 성장소설이라는 것과, 싱클레어와 콜필드 모두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끊임없이 방황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진지한 문체의 <데미안>과 좀 더 사실적이고 위트있는 문체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느낌이 매우 다른 소설이긴하지만 두 소설을 비슷한 시기에 읽고 나니,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어른이 된 싱클레어와 콜필드가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