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잘 지내고 있니?

by 이윤지


스물다섯 살에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학교로 방송 아나운서 반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나운서'라는 명칭 덕분인지 첫 학기 학생들이 많이 몰렸고
2학기 때는 더 늘어 1년 동안 150여 명을 가르쳤다.
1~2학년, 3~6학년 반으로 나누어 수업했는데
저학년은 저학년 대로 고학년은 고학년 대로 쉽지 않았다.

내가 강의를 하면 많이들 개그우먼 같다고 하는데,
웃기는 스킬이 이 시절에 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바로 엉덩이를 들고 뛰어다녔다.

모든 강의가 그렇지만 방과 후 학교는 특히
수업 후 아이들이 엄마에게 들려주는 한 마디가 입소문에 중요했다.
꼬마 손님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나는
수시로 개그우먼도 되고 용돈 지갑도 열었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선생님 최고!" 하면 몇 푼이 아깝지 않았다.

1~2학년 아이들은 정말이지 병아리 같았다.
수업 내내 나의 눈을 바라봐주었고
강조하는 지점에서 내가 눈을 크게 뜨면,
아이들도 똑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내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장난을 치면
까르르르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3~6학년 아이들도 참 고마웠다.
내가 배고프다는 말을 자주 해서인지
꼭 한두 명의 아이들은 그날 나온 급식의 간식을 챙겨주었다.
딱 하나 나오는 거 분명히 먹고 싶었을 텐데
"선생님~ 이거 선생님 주려고 가져왔어요."
수줍게 내밀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이었다.
같이 나눠 먹었던 귤은 정말 꿀맛이었다.

이때 나는 열정이 넘쳐서 고학년 아이들 몇 명을 모아
KBS 동요 프로그램에 나가보자고 합창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결국 동영상 제출에서부터 탈락하긴 했지만
수업 후 동요 연습을 하면서
중간중간 아이들과 춤도 추고 장난도 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말을 참으로 안 듣는 아이 한 명이 있었다.
분위기가 좋다가도 꼭 그 아이가 뛰어다녀서 나의 언성을 높였다.
심할 때는 수업 전체 흐름에 방해가 되었다.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득도의 발성으로 크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가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아이들에게 금방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실내화를 신은 채 허겁지겁 쫓아갔다.

아이는 학교 밖 저 언덕 위쪽까지 올라가서는 달려오는 나를 보고 있었다.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숨을 헐떡이며 어서 들어가자고 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어 교실로 돌아왔다.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과 인사를 나눈 뒤
여느 때처럼 커다란 초록 칠판을 지우개로 지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아까 그 아이가 아직 안 가고 있었다.

참 안 지워지는 분필 자국을 꾹꾹 누르며
"다들 학원 간다던데 너는 안 가니?" 하니
자긴 방과 후 수업만 한다고 했다.
엄마랑 사는데 일하러 가셔서 집에 가도 심심하다고 했다.

"그럼 와서 선생님 좀 도와줄래?"

그러자 아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아이는 정말로 성심성의껏 칠판을 지워주었다.
손이 안 닿는 곳은 의자를 밟고 올라가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날 이후 수업을 준비하러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교실에 와있노라면
창문으로 문득문득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그 아이가 신발장을 밟고 올라가 팔을 창문에 걸쳐놓고는 빼꼼히 보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하면 발 빠르게 내려와서
심심하게 수업을 준비하는 나의 곁에 있어주었다.

수업을 마치고도 때론 기다려준 덕에
그런 날은 지하철까지 혼자 걸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깡충깡충 뛰어가며 대화를 건네던 소년의 눈빛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지금은 엄청 많이 컸을 텐데,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맙다고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이렇게라도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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