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3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남편을 식탁으로 불러냈다.
“당신이나 나나 혼자 있으면 너무 멀쩡한 사람들인데 같이 사니까 자꾸 부딪히는 것 같아. 우리,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내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근데 알다시피 내가 돈이 없어. 미미, 코코랑 같이 살면서 글 쓸 공간도 필요하니 최소 방 두 개는 있어야 하잖아. 전세금 모을 시간이 필요해. 그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겠어?”
긴장했던 눈빛에 슬쩍 허탈함이 스며들었다. 그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뭐. 돈 모으면 그때 알려 줘.”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너무 먼 이야기를 꺼낸 걸까? 그래서 김이 샜을까?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겐 ‘자꾸 내 말 안 들으면 이혼할 거야’ 정도의 협박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남편의 반응에 비장했던 나도 머쓱해졌다. 그래도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말을 내뱉고 나니 반드시 돈을 모아 이혼을 하고 말겠다는 각오도 슬슬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혼 이야기를 나눈 직후, 나는 작업실로 쓰던 작은방을 침실 겸 작업실로 만들기로 했다. 완전한 독립은 훗날로 미뤘으니 우선 방 독립부터! 그런데 작은방은 정말 작은 방이었다. 이미 책꽂이와 책상으로 모든 벽면이 꽉 찬 상태라 침대 놓을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바로 벙커 침대! 사용하던 책상을 당근마켓에 내놓고, 그 자리에 침대와 책상이 위아래로 붙은 벙커 침대를 들여놓았다.
퀸사이즈 침대 시절을 마감하고 폭 90센티미터의 싱글 매트리스 시대를 맞이한 첫 밤! 방이 작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2층 침대는 오히려 아늑했다. 오랜만에 아무도 신경 쓸 필요 없는 밤의 자유를 맛봤다. 정말이지... 꿀 같은 밤이었다.
사방이 막힌 침대는 내게 또 다른 밤을 선물했다. 다시 일기를 끄적이기 시작한 거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자기 전 일기를 써오던 습관이 결혼 후 저절로 멈췄다. 혹여 남편이 일기장을 알아볼까 봐 아예 일기장을 보이는 곳에 꺼내놓지 않았다. 남편이 남의 사생활을 막 들추고 싶어 하는 성격도 아니고, 그렇다고 들키면 안 되는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별것 없는 일상일수록, 아무것도 아닌 속내일수록 누군가에게 들키면 민망하고 부끄러울 것 같은,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중단했던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후련한 마음으로 잠드는 날이 늘어갔다.
2층 침대에서 일어나 1층 책상으로 출근하며 다시 5년을 보냈다. 그동안 남편과 식사와 잠은 따로였지만 양쪽 집안 대소사나 고양이, 혹은 연예계 뉴스, 일상 등 소소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집안일도 적절히 분배했다. 차갑지만 사납지는 않은 관계. 결혼 12년 차 우리 부부의 모습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런 일상이 내겐 꽤 평온해서 이대로 쭉 살고 싶기도 했다. 그의 직장 문제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혼은 한참 후의 일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