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6
그랬다. 3~4년 강의하며 바쁘게 산 이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당장 내년에 누가 내게 강의를 의뢰할지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신세. 그게 프리랜서인 내 눈앞의 현실이었다. 지금도 맘껏 여행을 다니거나 보험료를 내고 차를 굴릴 만큼 여유 있는 벌이는 아니다. 씀씀이를 줄이는 생활에 적응한 덕분에 적은 벌이로도 그럭저럭 저축하며 살 수 있었다. 이혼하면 내 생활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데, 들쑥날쑥한 강의에 생계를 맡기는 건... 불확실한 일에 온 미래를 거는 일처럼 헛된 것 아닌가.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역시, 무의식이 보낸 불안의 신호는 정확했다. 어떨 땐 분주하고 정신없는 의식보다 직관적인 무의식이 더 현실적이고 믿을 만하다.
불안의 실체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선 일기장 뒷장에 내 한 달 생활비를 추산해 보았다. 대략 80에서 100만 원 정도면 생활은 가능. 옷을 사거나 여행을 가거나 경조사를 챙기려면 추가 금액 필요. 고양이 병원비도 추가. 기본 생활비의 얼마만이라도 고정적으로 벌 수 있다면 불안이 좀 줄지 않을까? 내겐 고정수입이 필요했다.
주중엔 강의하고 글도 써야 하니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을 구해보기로 했다. 이왕이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이사 가기 전에 시작해 보고 싶었다. 뭐가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건 식당 설거지 알바였다. 유튜브에서 주말 설거지 알바로 80만 원을 벌어 생활한다는 이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종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일은 무척 고될 것이다. 몸에 피로도 많이 쌓일 테고. 어쩌면 골병이 들 수도 있다.
그래도 매주 2일의 노동쯤은 내 몸이 버텨주기를 기대하면서 구인 앱 두 개를 핸드폰에 설치했다. 지역과 원하는 동네를 설정한 후 ‘설거지’로 검색했더니 의외로 몇 군데 뜨지 않았다. 실망.
이번엔 ‘주말’로 검색을 해보았다. 화면 상단부터 주르륵 뜬 건 바로 편의점 알바였다. 시간대도 다양하고 근무 요일도 하루 이틀, 5일 등 저마다 달랐다. 세상에나, 편의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었다니... 마침 이사 갈 동네 편의점 서너 군데에서 주말 구인 광고를 올렸기에 자세히 보았다. 이중 세 군데는 밤샘 야간 근무, 그리고 한 군데에서 주말 오후 시간대 근무자를 모집 중이었다. 초보 가능, 주부 가능, 경력 단절 가능. ‘경력자 우대’라는 조건도 있었지만, 내겐 ‘초보, 주부’라는 문구가 나를 향한 응원가로 들렸다.
가슴이 두근댔다. 지원해 볼까. 잘할 수 있을까. 모집 공고에는 “문자 혹은 전화로 지원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전화 통화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적은 문자를 택했다. 일단 핸드폰 화면을 열었다. 간단한 문장을 몇 줄 쓰고 고치고 쓰고... 그러고도 한참 동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손에서 흐른 땀에 핸드폰이 자꾸 얼룩졌다.
‘나를 뽑아 줄까. 채용만 된다면 일은 어떻게든 배워나갈 텐데. 아무 응답이 없으면 어쩌나...’
‘그럼 다른 데 또 지원하면 되지. 이번엔 지원하는 경험을 해보는 거라 생각하자!’
망설임 끝에 갑자기 힘이 났다.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얼른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주말 알바 지원합니다. 이름 000, 나이는 마흔여섯, 여성입니다. 편의점 경력은 없지만 일 잘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