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5
첫 출근을 앞둔 밤. 낮부터 보기 시작한 유튜브를 자정이 넘도록 보고 또 봤다. 편의점 직원들이 야간 근무 모습을 찍은 셀프 영상들이다. 20대 초중반의 경쾌하고 능숙한 몸동작이 화면 속에 가득했다.
수십 개의 영상을 본 결과, 어느 곳이든 매장에서 하는 일은 비슷한 것 같았다. 손님이 뜸한 새벽 시간대, 깨끗하고 환한 실내에서 여유롭게 일하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근무할 매장에는 손님이 많을까 적을까. 평소 편의점 가는 일이 드문 내가 전임자의 말을 잘 알아먹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눈이 아파도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서너 시간 자는 둥 마는 둥. 드디어 날이 밝았다. 출근 시간은 오후 세 시. 현 근무자에게 꼬박 7시간 동안 일을 배울 예정이다. 중간에 배가 고플 테니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히 오이 김밥을 싸고 물 한 병과 핸드폰 충전기도 챙겼다.
편의점에 가려면 버스를 40분 동안 타야 한다. 10분 전까지 오라고 했으니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길목마다 있는 가까운 편의점들을 놔두고 먼 곳에서 일자리를 구한 이유는, 3주 후 그곳으로 이사 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왕복 두 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조만간 걸어서 다닐 수 있을 거다.
주말 오후 버스 안은 차분했다. 비스듬한 햇빛이 얼굴을 내리쬈다. 눈을 감고 온기를 느꼈다. 눈 속이 환하고 붉은 빛으로 가득찼다. 복잡한 생각이 소음처럼 머릿속에서 와글와글 댔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속도가 정신이 아찔할 만큼 빨라서 버스가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일들을 되짚어갔다.
남편과 본격 이혼 이야기를 나눈 이후부터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결정은 깔끔하게 했지만 솔직히 정말 잘하는 일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집을 계약했다. 두 살 터울의 친언니가 사는 동네에 적당한 조그만 아파트를 구한 것이다.
이삿날을 정한 순간부터 할 일이 쏟아졌다. 남편은 아직 이사 예정일이 많이 남았으니 내가 먼저 가져갈 짐을 따로 빼서 꾸려야 했다. 한 집 살림을 두 집 살림으로 나누는 일, 그러니까 숟가락부터 시작해 냄비와 가전제품 등 온갖 살림을 내가 가져갈 것과 남겨 둘 것으로 구분해 놓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진저리가 쳐질 만큼 피로도 최상급이었다. 이 선별 이사 하기 싫어서라도 앞으로 그 누구와도 살림을 합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 또 다짐할 정도였다.
이사업체와 청소업체를 정하느라 2~3일 인터넷을 검색하고, 가전제품도 새로 고르고 예약 주문을 걸어 두었다. 신혼살림으로 샀던 냉장고와 침대 등 각종 가전제품과 가구들은 부피가 커서 아무래도 좁은 집으로 가는 내겐 적당치 않았다. 다행히 남편은 새로 사는 걸 질색하는 성격이니 이럴 땐 손발이 딱 맞았다고나 할까.
가장 골치 아픈 건, 내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2층 침대였다. 이케아에서 산 이 침대는 전문가가 와야 겨우 분해가 가능한 구조라 한다. 재조립하면 안전성을 장담하지 못한다기에, 책상만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집은 이삿짐을 꾸린 박스와 온갖 짐들로 어지러워 발밑을 보고 걸어야 낭패를 안 볼 지경인데 침대를 미리 해체하면 내가 잘 곳은 단 한 군데, 남편 침대 옆자리(원래는 내 자리) 밖에 안 남는다. 책상 위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결국 침대 해체는 이사 바로 전날 하기로 했다. 마지막 밤, 그 하루는 짐들 사이에 모로 누워서라도 어떻게든 잘 수 있지 않을까, 까짓 거!
이사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 한창 강의가 많은 시즌이라 일주일에 서너 군데 강의를 다녔다. 그런데 짐을 싸거나 강의를 다니느라 전철에 서 있는다거나, 많이 걷는다거나 하는, 몸이 힘든 건 그래도 견딜 만했다. 잠시라도 쉬면 해결되니 말이다.
이따금 밑도 끝도 없는 불안이 찾아왔다. 이사 갈 집에 나를 잡아먹을 괴물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어느 밤, 침대에 누웠을 때 컴컴한 공중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두려움이 확 몰려왔다. 다급히 일기장을 펼쳤다.
뭐가 무서워?
뭘 두려워하는 거야?
단 한 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내 손이 이렇게 쓰고 있었다.
굶어 죽을까 봐. 고양이들도 못 거두고 사라질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