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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터틀 Nov 19. 2020

한국인의 수치

레 시내 여행의 시작점인 레 왕궁으로 향했다.

라다크 왕조는 티베트 왕조의 분파로 시작해, 17세기에는 티베트 왕조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레 왕궁은 라다크 왕국의 전성기 왕이었던 셍겔 남걀에 의해 세워졌다.

왕궁은 건조기후 특유의 평평한 지붕의 흙집 양식을 잘 나타내는 모습이었다. 흙집들을 보고 있자니 다보탑이 그려 있던 옛날 과자 초이스가 생각났다.

흙집이 과자 같아 보이는 것이 여행의 피로가 쌓여가는 것이 분명하다.


왕궁은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시내를 전부 내려다볼 수 있다.

당시엔 방어용이었겠지만 지금은 레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 포인트가 되었다. 설산의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단층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은 레 시내의 경관을 보는 것만으로 평온한 마음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왕궁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왕궁의 지붕이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다. 서둘러 관광객을 금지하고 복원해야 할 것 같은데 맨 위 층인 9층에 올라가지 말라고 펜글씨로 쓰여 있을 뿐이었다. 관리자가 없는 왕궁의 벽에는 낙서가 빼곡히 새겨 있었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한국어 낙서였다. 많은 낙서가 있었지만 알파벳 표기 이외의 낙서는 한국어뿐이었다. 너무도 눈에 띄었다.


레 왕궁이 경복궁이라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는 분노와 부끄러움의 말을 의미 없이 허공에 뱉어낸 후 레 왕궁에서 내려왔다.


레 왕궁에서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면 남걀 체모 곰파가 있다. 

사실 그렇게 가파르거나 위험한 길은 아니지만, 씩씩하게 오른다면 고산병으로 인해 숨이 가빠 올 수 있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갔다가 계속 미끄러져 애를 먹었다. 

은숙이 처음으로 고산병 증상을 호소했다. 얼굴이 새 파래 졌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앞으로 보내고 반보도 안 되는 보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남걀 체모 곰파는 15세기 남걀 왕조 초기에 건축되었는데 레 왕궁보다 더 관리가 안 된 상태로 남아있어 매우 안타까웠다. 하지만 남걀 체모 곰파와 주변 봉우리 사이로 타르초가 흩날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신비로운 기분이 들어 마치 만화경을 보는 것 같았다.  

남걀 체모 곰파의 전망은 레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만큼 최고의 전망이었다. 히말라야 산자락이 레 시내를 폭 앉고 있는 모습이 포근하게 느껴져 이곳이 4300m라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은 빨랐다. 올라갈 때의 시간의 반도 걸리지 않았다. 고산 증세가 없으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빠른 걸음으로 메인 로드에 도달해 한식당 아미고로 갔다. 필연적 선택이었다. 세영은 고산 증세가 있고 은숙는 장염 증세가 시작되었으며 윤정은 코피가 터졌으며 난 인도 음식에 질렸다. 인도와 티벳인들의 비건 활동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우리는 침묵 속에 삼겹살을 흡입했다. 


인도에서 처음 먹는 돼지고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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