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판공초-누브라밸리 투어를 간다.
총 3박 4일 일정으로 우리는 사실 이 날을 위해 라다크 여행을 시작했다.
오늘의 베이스캠프인 뚜루뚝 마을은 누브라밸리의 최북단에 있는 마을로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인 탓에 2010년에서야 관광객에게 개방되었다. 레에서는 10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라다크 여행은 이동에 이동을 거듭하는 여행이다.
10시간은 기본, 13시간. 15시간.
산사태가 나거나 사고가 나면 20시간 동안 차 안에 갇혀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나는 멀미가 있어 라다크에 오자마자 키미테를 붙였다. 그래도 10시간씩 차를 타고 가는 건 고통의 연속이다.
하지만, 라다크 여행은 이동하는 시간이 축복인 여행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히말라야 천상의 뷰를 하루 종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까르둥라에 도착했다. 까르둥라(5606M)는 세계에서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 도로 중 가장 높은 도로이다. 백두산이 2750M이니 백두산의 두 배보다 100M가 더 높은 셈이다.
까르둥라에 도착하니 사람이 많았다. 바이크를 타고 온 사람, 우리처럼 지프를 타고 온 사람, 심지어는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산소 카페와 응급구호(First aid) 하는 곳이 있었다. 고산병이 없는 나도 까르둥라에 오니 손과 발이 극심하게 저려왔다. 세영은 사진을 찍는 둥 마는 둥 하고 고통을 호소했다.
고산병은 불시에 온다. 오는 길에 한 카페에서 고산병 증상과 예방에 대한 글귀를 보았다.
☆ 증상 : 가벼운 두통, 폐와 뇌에 피가 쏠림, 배에 통증, 무력감, 현기증
☆ 예방 : 수분 보충. 현기증을 무시하지 말 것. 이동 중에 짧은 휴식을 취하
고, 단것과 초콜릿을 소비하여 당 수치를 높게 유지하라.
까르둥라에서 시간을 보내고, 뚜르뚝으로 가는 중 tea-stall이라는 카페에 들렀다.
멀미와 고산증으로 지친 우리에게 최고의 음료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돌아온 대답은 카와티(kawah tea)였다. 카와티는 레몬, 생강 등을 혼합한 차로서 건강에 매우 좋은 차라는 설명을 들었다.
달콤하며 시큼하며 알싸한 것이 오감이 만족되었다.
차를 마시니 고산 증세가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 들어갈 때 꼭 사가야 겠다.
긴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알리와 드디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보스에 따르면 알리는 말이 원래 많지 않고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했다.
짧은 영어이지만 알리는 성심성의껏 관광지를 소개해줬다.
라다크에서 지프 투어를 할 경우 많은 기사들의 졸음운전으로 여행자들이 죽음 문턱까지 갔다는 후기를 많이 보았다. 하지만 알리는 졸음운전은 커녕 집중력이 흐려지거나 과속운전을 하는 것도 못 봤다.
우리는 알리가 피로해질 때면 준비한 간식거리를 나눠 먹었고 알리도 좀 편해졌는지 본인에 대해 소개를 해주었다. 라다크 지방은 크게 레와 카르길로 나뉘는데 알리는 카르길에서 왔다고 했다. 종교는 이슬람교라고 한다.
라다크는 파키스탄 접경 지역인 만큼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슬람교였다.
나이는 예상과 다르게 24살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따져도 26살밖에 되지 않았다. 직사광선의 강렬한 라다크의 햇볕 때문에 피부가 많이 상해서 좀 더 들어 보였지만 웃을 때면 20대 초반의 해맑은 웃음이 나오곤 했다.
뚜루뚝 마을 예상 도착시간은 2~3시, 그러나 실제 도착 시간은 6시 반이었다.
짐을 풀자 뚜르뚝 마을의 해가 저물었다. 우리는 5시에 일어나 새벽 산책을 하기로 하고 일찍 잠들었다. 한참 단잠에 취해 있는데 함께 자고 있는 은숙이 나를 급하게 깨웠다. 하늘을 보라는 것이다. 나는 순간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쏟아질 것 같은 별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뚜르뚝에서 우리의 숙소(MAHA GUESTHOUSE)는 사방이 창문으로 뚫려 있었다. 불빛이 없고 공기가 깨끗한 이곳에선 별이 어느 곳보다도 생생하게 보였다.
꿈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새벽이 왔다. 이 곳 라다크에선 알람을 해놓지 않아도 모스크의 기도를 알리는 소리에 일어나게 된다.
뚜르뚝의 공기는 세상 어느 곳 보다 고요했고,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감칠맛이 있었다.
더 말해 무엇 하리.
이곳은 히말라야 산자락이다.
새벽 5시이지만 농사일을 하러 나온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줄레~”라고 정겹게 인사를 나누었다.
보통 인도에서는 “나마스떼~”라고 인사하지만 라다크 지역의 인사는 “줄레~”이다. 마을 주민들은 우리들의 어설픈 인사를 다정하게 받아주었다. 우리는 발길 닫는 대로 향했다. 목조 나무다리를 건너 모스크도 가보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우체국과 경찰서도 보았다. 작은 마을이지만 나름대로 시스템을 갖추어 질서 있게 사는 모습이 정갈해 보였다.
뚜르뚝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에는 옷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자연 세탁기인 것이다. 만년설이 흐르는 계곡물에 자동으로 빨래가 되면 수거해 가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벌써 햇볕이 따갑기 시작했다. 라다크는 하늘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금방 햇볕이 강해진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농사일을 하러 나가는 앳된 아기 엄마,
한 개의 스마트 폰에 우르르 몰려 만화를 보는 애들,
화분에 쉬를 하는 아기와 줄레~ 줄레~ 인사를 하며 뚜르뚝 마을 탐방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출발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주는 조식을 먹으러 갔다.
주인은 레 호텔 보스의 사촌이라고 했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뚜르뚝 마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뚜르뚝 마을은 원래는 파키스탄의 발티스탄 주였다. 8km만 더 북쪽으로 가면 파키스탄과의 국경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국가만 4번 바뀐 곳이라 했다. 파키스탄 - 영국 - 파키스탄-인도 순으로. 주인장은 83년생이라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74~75년 카슈미르 전쟁을 경험했다고 했다. 뚜르뚝 마을은 그때 인도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현재 삼촌은 파키스탄에 살고 있고 친척들이 한 나라에 살다가 졸지에 인도와 파키스탄에 갈라져 살게 되었다고 했다. 보스니아에 갔을 땐 보스니아 내전을 건물에 있는 총탄을 보고 이곳에 내전이 있었구나.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뚜르뚝은 너무도 평온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우리는 어느 국가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평화로운 삶이 중요할 뿐이야.”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알리를 만났다. 알리에게 출발하자고 하니,
“혹시 너희 뮤지엄 다녀왔니?”
“아니”
“거기 너무 좋은 데 한번 가봐~”
사실 새벽 산책길에 사람들이 뮤지엄을 가는 거냐고 많이 물었었다. 말수가 없는 알리가 추천하는 곳이라니 꼭 가봐야겠다. 알려준 방향으로 한참 걸었지만 뮤지엄은 나오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냥 주택을 가리키며 뮤지엄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게 뭔 박물관이야 하면서 반신반의했다. 내부도 별다를 게 없었다. 다시 나가야 하나 갈등하고 있는데, 한 노인 분께서 이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갑자기 테라스에서 밖을 한번 보라고 하셨다. 이곳이 왕궁 터라는 것이다. 이 작은 마을에 왕궁이라고?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