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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Sep 28. 2024

소문

어린 집사가 탄생한 밤의 어둠이 물러가고, 시끄러운 날을 예고하듯 늦은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 새벽 7시. 방에 있는 알람 시계가 연달아 울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하나둘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복도로 걸어 나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꿈 살 사람? 나 오늘 꿈자리 예술이야.”


“어우, 속 쓰려. 야! 내가 어제 그냥 자자고 했지!”


침묵을 포함한 저마다의 다른 아침 인사들. 방금까지만 해도 도서관 같던 저택의 복도는 금세 날이 곤두선 경매장처럼 피가 튀었다. 그리고 이곳 집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이한 사람.


“집중!!!”


먼젓번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단박에 옭아지는 그들의 수선함. 복도 끝에서 목청을 내세우는 한 명의 사람. 같은 상황 같지만 달라진 외형. 그녀는 복장부터 남달랐다. 집사만이 입을 수 있는 흑색 단일의 옷차림. 지난 26년간 아무도 넘보지 못한 것. 어제까지만 해도 연희가 입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은 잠시간 혼동의 시간을 가졌다. 그들 대부분은 현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고,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연희가 아니라는 것까지 알아차리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연히 예외는 존재했다.


“네가…, 네가 왜 그걸 입고 있어?”


복도에 늘어선 사람들 속에서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시안을 핍박하는 일에 늘 필두로 나서곤 했던 그 여인이었다. 그녀가 시작을 끊으면, 뒤이어 말들이 이어져 나가야 했다. 그것이 원래 그들의 모습이었고, 그들이 시안을 대하던 마음가짐이었다.


“뭐야, 다들 왜 조용해? 쟤가 입고 있는 옷 안 보여?! 저년 지금 연 집사님 옷을 훔쳐 입고 있잖아!!”


아무도 말하지 않자, 여인이 시안을 향해 삿대질하며 거센 목소리로 열변을 토해냈다. 시안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의 효과는 굉장했다. 물고기 한 마리가 물살이 험하다며 투정을 부린다고 하여 강이 물길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듯, 시안이 택한 방법은 너무도 탁월했고, 작용이 확실했다. 남은 피라미들은 속으로 그녀에게 감사하는 중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사람이 자신이 되면 안 되는 일. 그러나 그들은 거기까지였다. 다들 미루고 있었다. 이제 누군가가 또 다른 시작을 끊어야 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좋은 아침입니다, 집사님.”


주방에서 사과를 건넸던 그 사람이었다. 당찬 걸음으로 앞으로 나와 머리를 숙이는 그녀. 그에 시안은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를 한 여인은 그대로 자신의 일터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보낸 시안은 다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들은 알아야만 했다.


“나는 용납 못 해. 아니, 인정할 수 없어.”


그 모습을 본 여인이 다시금 부정을 꺼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시안이 점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럴 수는 없는 거야. 네가 한 게 뭐 있다고! 적어도 우리 사이에서 선출됐어야 해! 네가 아무리 연 집사님 총애를 받았다고는 해도! 이건 아니야! 알아?!”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제가 이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은 연 집사님의 총애 때문이 아닙니다.”


“뭐?”


여인의 대꾸와 함께 복도에 서 있는 모두의 시선이 시안이 있는 곳으로 집중됐다.


“회장님의 총애이지.”


모두를 비웃으며 내던진 시안의 한마디. 필두로 선 여인의 뒤로 조용한 경악이 번져 나갔다. 이미 시안을 지나쳐 일터로 들어간 여인을 제외하고서, 이제 그들의 손에 남아 있는 것은 이해가 아니었다. 선택이었다. 딸아이 같은 나이의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든지, 아니면 입고 있는 옷을 벗고 저택을 나가든지.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그때, 시안이 상황을 거들었다.


“버릴 물건을 잘 고르세요. 자존심 하나 지키겠다고 모두를 잃지 마시고.”


“허! 참! 어이가 없어서.”


다시 또 그 여인이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여인은 허리에 묶인 앞치마의 끈을 찢어발기듯 풀어, 바닥 위로 그를 내던졌다. 그리고 여인은 시안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네년이 남 회장 눈에 무슨 수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얼마 가지 못해. 똑똑히 잘 봐둬. 곧 내 꼴이 날 테니까.”


시안이 대답했다.


“그래요. 값진 조언 달게 받죠.”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그녀에게 시안의 저 같은 대꾸는 타격이 없었다. 옷을 내던진 여인은 시안에 등을 보이며 뒤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런 자존심도 없는!! 빌어먹을 노예 새끼들, 너희도 똑같아.”


그리고 그녀는 복도 끝에 서 있는 시안을 지나쳐 현관으로 향해 갔다. 다음으로 우르르 뭉쳐 있는 여인들. 그들은 그 여인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아무런 시늉도 보이지 않았다. 선택을 마쳤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 시안을 향한 여인들의 고개 숙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인사를 받으며 인사말을 건넨 시안은 그제야 2층 집사실로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오후가 찾아왔다.


“바쁘세요?”


거실로 내려온 시안이 누군가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건넸다.


“아니요, 괜찮아요. 아, 집사님? 뭐 시키실 거 있으세요?”


여인이 상냥한 말투로 뒤돌며 그에 답했다. 오늘 아침, 제일 먼저 시안을 인정했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지극히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기까지 한 태도.


“아, 그런 게 아니라,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그녀의 태도를 본 시안은 턱밑까지 차오른 말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이미 세워 버린 권위였고, 맞춰진 눈높이를 재조정하는 건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 제일 큰 까닭이었다.


“감사는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부분인걸요.”


“반대 세력이 많았잖아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시안의 대답에 여인이 작게 숨을 들이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인정의 표식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감히 조언해 드리자면, 당분간은 오늘 아침처럼 행동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시겠지만, 다들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있거든요. 이러저러한 상황에 있어서요.”


“뒷말들은 없어요?”


“음…, 없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거 같아요.”


여인이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대답했다. 그리고 시안이 말하려는 그때, 여인이 번뜩 두 눈을 위로 치켜뜨며 입술을 움직였다.


“많습니다. 정말 많아요. 너무도 많습니다.”


시안은 곧장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을 대신해 초조해하고, 불안에 떠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시안은 즐거웠다. 해서, 시안은 그녀를 조금 더 띄워 보기로 했다.


“그렇게 놀랄 만큼이에요? 내용이 뭔데요? 들은 게 있을까요?”


위로 올려진 여인은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거부했다. 자기 입으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는 듯 행동했다. 그러나 시안은 입김 불어 넣기를 멈추지 않았다.


“말씀해 주셔야 해요. 그래야 저도 대비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을 마친 시안은 여인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리고, 여인의 말소리가 이어졌다.


“집사님께서 몸을 파셨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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