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한 섬찟함과 함께 퓨티는 워블로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절규를 들었다. 메아리는 길고도 두터웠으며, 이대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느끼게 할 만큼 힘이 강했다. 만약 그녀가 실제로 소리를 냈다면, 퓨티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녀의 대답까지는 퓨티의 말이 있고부터 2초가 채 못 됐다.
“그래요? 그가 사형대를 보고파 하던가요? 신기한 사람이네요.”
그리고 워블은 나무 숟가락을 들어 자신의 앞쪽에 놓인 미음을 저었다. 수저를 잡는 짧은 순간, 아주 격렬하게 그녀의 손이 떨렸다. 퓨티는 그를 보지 못했다.
“네, 정말 특이하죠? 저도 처음엔 말 그대로였어요. 이상한 사람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거리감을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요?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워블이 미음을 계속 저으며 말했다.
“홈 씨가 먼저였을 거예요. 지독한 냄새에 코를 틀어막더라고요. 저 역시나 마찬가지였고요. 그 뒤로는 욕을 퍼부었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어요. 말뚝 아래의 바닥 짓뭉개는 일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아마 신발 밑창이 물 묻은 흙으로 잔뜩 범벅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을걸요. 하하하.”
말을 마친 퓨티는 손을 뻗어 그릇을 만졌다. 어설픔이 여기저기 떨어졌다. 워블은 퓨티의 첫 문장을 듣자마자 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그리고 퓨티가 웃음을 그치자, 목을 가다듬고는 태연한 목소리로 목소리를 내었다.
“퓨티 양의 목소리는 참 듣기가 좋아요. 꼭 과일 토핑이 가득한 케이크를 보는 것 같아.”
“케이크요?”
“네. 시티의 빵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이에요. 대신, 먹는 날이 1년에 한 번뿐이라 아주 귀한 대접을 받죠.”
퓨티는 빵의 일종이구나, 라고 속으로 되뇐 다음, 다시금 물음을 건네기 전에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는 워블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미소를 흉내 내며 워블을 향해 말했다.
“값이 많이 나가는 빵인가 봐요.”
“그래, 맞아요. 케이크를 먹는 사람의 하루는 값을 이루 말할 수 없죠. 역시 퓨티 양이네요. 아주 똑똑해요. 하지만, 나 역시도 그렇게 무딘 사람은 아니랍니다.”
“네?”
“퓨티 양. 난 오늘 케이크를 먹는 날이 아니에요. 부탁이니 내게 달콤함을 떠먹이는 일을 그만둬 줬으면 좋겠어요.”
그 말과 함께 워블의 얼굴 위 미소가 구름 개듯 사라졌다. 그리고 검은색 구체 비슷한 것이 나타났다. 검은 물체는 새처럼 워블의 얼굴에 앉았다가, 진물처럼 녹아 없어졌다. 퓨티는 이제 의심하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게 워블에게서 나와 있던 감정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뒤, 말을 이었다. 퓨티는 자세를 낮췄다. 퓨티의 하얗고 도톰한 팔뚝이 식탁 위로 드러났다.
“죄송해요.”
앞선 것과는 달리, 한층 어두운 목소리로 퓨티는 말했다.
“뭐가요?”
이제 워블은 거의 속삭였다. 선율처럼 깔리는 목소리가 옅으면서도 짙어, 얼굴이 제법 떨어져 있음에도 붙어 있는 상황처럼 소리가 울렸다.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좀 더 솔직해져 봐요.”
“…집요하시네요.”
“거짓말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퓨티는 팔뚝을 X자로 꼬아, 한 손으로 다른 쪽 팔꿈치를 주물렀다. 그리고 주무르던 팔꿈치가 그만하라는 듯이 부끄러운 선홍색으로 변하자, 손을 떼고서 말을 뱉었다.
“나쁜 사람이 되기 싫었어요. 워블 씨한테요. 아마 대단한 영악함을 지닌 저는 상황이 이렇게 되길 바랐는지도 몰라요. 자주 하곤 하거든요. 불리한 상황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일을요.”
“그런 스스로를 칭찬하도록 해요. 결과적으로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벌었고, 퓨티 양도 무뎌진 나와 마주할 일만 남기게 되었으니 서로가 잘되었잖아요?”
그리고 워블은 내내 움츠려 있던 가슴을 활짝 펴며 팔을 양옆으로 쭉 뻗고서 웃었다. 그 웃음만으로 본다면, 구름을 껴 맞추는 광녀의 이미지나 광활한 향수병을 맞은 위태로운 여인이 잊힐 정도였다. 그만큼 워블의 미소는 아름다운 값어치가 있었다. 미소를 본 퓨티도 그를 느꼈기에 앞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워블 씨의 미움을 살지도 몰라요. 만약 제가 이 말을…”
“퓨티 양.”
“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편하게 말하도록 해요. 벌써 내가 이만큼의 부담을 안기고 있잖아요? 나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진흙을 짓밟지 않았었어도요?”
퓨티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워블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워블이 대답했다.
“그럼요.”
퓨티는 한 번 더 확인의 물음을 건넸다.
“사형대의 사다리를 올라갔었어도요?”
“당연하죠.”
거기서 퓨티의 머릿속은 펑 하고 터졌다. 그 뒤로의 행동은 자동화가 입력된 기계 같았다. 어른으로부터 안심을 건네받은 아이처럼 퓨티는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저희는 정말이지 미련한 인간들이었어요. 오전의 그 많은 비를 맞으며 홈 씨의 집으로 향한 저부터가 발단이었을 거예요. 제가 가지 않았더라면 홈 씨는 가는 길도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그의 집 앞이었어요. 온몸이 젖어 몸이 무겁다는 사실도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죠. 돌이켜보니 마냥 좋아했던 것 같아요. 친구가 생겼음에, …그리고 아버지가 아닌 다른 대화 상대가 생겼음에 특히 말이죠. 아버지와 하는 말은 늘 반복적이었거든요. 전날 잠은 잘 잤는지, 꿈은 잘 꿨는지, 오늘은 뭘 하러 나갈 것
인지,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설 때도 아침과 전혀 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금 나쁜 표현이지만 아버지가 지겨웠어요. 하지만 제겐 또 제 나름의 그럴듯한 이유가 존재해요. 어린 기억 속의 아버지는 저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제 기억에, 시티에서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명랑했어요. 힘이 없더라도 절대 남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죠.”
그리고 퓨티는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이런 걸 말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워블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해와 포용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표정과 함께였다.
“그래서요?”
“그래서, 조금 아쉬워요. 아마도 그로부터 나온 호기심일 테죠.”
“후회하고 있군요, 퓨티 양은. 그게 아니면 과한 기대를 한 자신을 돌아보게 한 계기가 있거나.”
그 말에 퓨티는 맥 빠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나이가 들면 뭐든 보이는 게 많아지죠. 그게 도움이 되는 때는 극히 드물지만.”
“……, 사실은 둘 다예요. 홈 씨를 만나면서 그 둘 다를 느낀 것 같아요. 첫 번째보단 두 번째 감정이 먼저 왔어요. 들어서 아시겠지만, 저는 갈망하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혼자 간직하고 있던 그 환상이 깨졌나 봐요.”
퓨티의 얼굴은 다시 처음처럼 우울히 변하였다. 그에 워블이 금방이라도 손을 내밀어 쓰다듬을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꽃집 사장이 할 수 있을 만한 말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여기서 퓨티는 자신이 홈과의 대화에서 말하지 않은 부분을 워블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퓨티는 그저 가라앉은 채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별 얘기도 아니었어요. 단지, 어느 소설 이야기였어요. …제가.”
그때 워블이 몸을 앞쪽으로 당기며 퓨티의 말을 끊었다.
“소설? 종이책을 말하는 거예요?”
퓨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워블이 손바닥 정중앙으로 입을 모조리 가리고서는 소리 냈다.
“어머, 세상에나.”
다음으론 워블 스스로도 감정이 앞섰다는 걸 자각한 듯 떨리는 어조로 말을 뱉었다. 붉게 북받쳐 오른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입을 가린 손 역시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안해요, 퓨티 양. …하지만, 하지만 왜요? 그가 얘기한 소설이 이상한 내용의 글이었어요? 그게 아니면 꾸며 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처음이라 감정이 뒤틀렸던 건가요?”
그리고 워블은 곧장 사과했다.
“뒤틀렸다는 표현은 과했네요. 사과할게요.”
퓨티는 아주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워블이 자기의 이야기를 입을 가리기 전과 같은 자세로 들어 주지 않을 거란 데에서 오는 상실감은 고스란히 간직했다.
“홈 씨가 처음 그 이야기를 꺼낸 건 저희가 막 사형대의 사다리를 밝고 올라 마을 구경에 빠져 있을 때였어요. 저 역시도 그곳까지 밟아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기에, 단숨에 넋을 잃었죠. 그럴 만했어요. 하늘도 흐리고, 빗줄기가 굵음에도, 제가 태어나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거든요. 오늘 홈 씨와 본 정경이요.”
그리고 워블이 말했다.
“음, 어째 갈수록 다음 이야기 듣기가 불안해지는데요. 지금까진 누가 들어도 로맨틱한 상황이잖아요. 태어나 처음 생긴 이성 친구에, 말까지 잘 통한 탓에 둘이서 데이트까지 해 버렸고요.”
이성이라는 말에 퓨티는 몸에 전율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감촉 역시 처음 느껴 보는 것이라며.
“빼먹은 게 있어요.”
“편하게 말해요.”
워블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말뚝에 대한 얘기예요. 제가 만약 눈치가 좋은 사람이었더라면, 거기서부터 감정이 뒤틀릴 거라는 걸 예상했을지도 모르죠.”
워블은 자신이 앞서 사용했던 표현이 나오자, 눈을 살짝 찡그렸다. 그리곤 말을 이어 붙였다.
“그가 말뚝을 보고 뭐라 하던가요?”
퓨티는 곧장 답하기 싫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었다. 작지 않은 숨소리가 한곳에 뭉쳤고, 빨려 들어간 숨이 무게에 이끌려 워블의 앞으로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린 것처럼 둘이 맞대 앉은 식탁 주변이 들썩였다. 그리고 직후에 퓨티의 말소리가 이어졌다.
“뭐라고 말했다기보다는, …감탄을 했죠.”
워블이 입을 가렸다고는 하지만, 퓨티는 거의 확신에 차 있었다. 워블은 분명 인색한 얼굴을 내비칠 것이고, 그때의 자신은 어떠한 표정과 목소리로써 그녀를 달래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확신은 우습게도 빗나갔다. 워블의 한마디였다.
“죽음을 들었나 보군요.”
“네?”
“정확히는 죽은 이의 장례 절차를 들은 거고요.”
워블이 말을 이어 나갔다. 퓨티는 사이마다 들리는 그녀의 간극이 비웃음처럼 들려, 전보다 좀 더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고는 이내 전혀 다른 감정이 같이 들어옴을 느꼈다. 늙음을 부러워하는 감정.
“맞아요. …아, 당연히 알고 계시겠구나. 저만 모르는 거였어요.”
“퓨티 양, 지금 설마 자책하는 거예요?”
워블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남들이 다 아는 걸 홀로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니까요.”
그리고 고고하다면 고고한 자세로 등을 기대어 있던 워블은 불쑥 앞쪽으로 나와 퓨티의 팔을 잡았다. 퓨티는 하마터면 잡힌 손을 뿌리칠 뻔했다. 예전에 마토가 자신의 손을 강제로 잡았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다르지 않아요.”
워블이 퓨티의 손을 붙든 채로 말했다.
“시티가 시티이기 이전부터 있던 게 장례랍니다. 마을의 말뚝처럼 지저분한 무덤도 있는 반면, 사람들의 존경과 아름다운 꽃다발이 가득한 무덤도 있지요.”
그리고 워블은 한숨을 뱉으며 몹시 어렵게 다음 말을 뱉어냈다.
“우리 애는 누리지 못하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