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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Aug 19. 2024

시티란 어떤 곳인가

붉은색 철근이 내뱉는 덜컹거림은 골목 샅샅이 뿌리내린 찝찝한 안개 사이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밝은색이 있었더라면, 아니, 세상 말로 표현 못 할 아름다운 색이 있었더라도 이곳은 우울하게 보였을 것이다. 사람의 인기척은 드문드문 존재했다. 하지만, 거리가 죄다 시커멓고 희뿌연 탓에 그들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하나하나 식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길이 끊어지는 마디마다 생명이 다한 것을 골라 비추는 듯한 허연 가로등이 서 있었는데, 열에 아홉은 당장이라도 곧 꺼질 녀석과도 같은 몸부림을 쳐대는 중이었다. 그런 가로등이 입구서부터 손을 흔들고 있으니, 그야말로 초장부터 구역의 밑천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었다. 거리의 대부분은 무언가를 파는 가게로 채워져 있었다. 가게 간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모두 다 내부가 훤히 보일 정도로 외벽의 유리를 깨끗하게 청소해 두었다는 점. 예외는 없었다. 불이 꺼진 가게조차 다른 가게의 빛을 받아 투영하게 반짝대고 있었으니까. 가게는 보통 조명의 색으로써 제품군을 분간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옷이나 장신구, 식료품과 같이 스스럼없이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판매하는 곳은 밝은색을. 담배나 술, 혹은 약물처럼 구매에 약간의 처세술이 요구되는 곳은 어두운색을. 거리가 이렇게 느슨히 자리 잡힌 것은 이제 한 달 남짓. 그러니까, 암흑에 가까운 드높은 장벽에서 시종일관 감시의 눈초리를 떨어뜨리던 가더들이 종적을 감춘 날부터였다. 그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진 첫날, 그 하루의 거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간의 눈치를 벗어던지고서 거리를 활보하는 데만 스스로를 내맡긴 사람들. 길은 지독한 철창에 갇혀 있던 개들이 풀려난 것처럼 금세 발자국과 표시들로 얼룩졌다. 그것도 단 몇 시간. 축제 중인 사람들에게로 한 가지 말이 번져 가기 전까지만. 그것은 축배 들기에 동참하지 않은 몇몇 간잽이들의 입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숫자는 허물어지지 않았다.’

     

“안개가 오래도 가는군.”


딘은 시가를 닮은 얇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생긴 것만큼이나 격조 있는 목소리였다. 짧게 친 머리에 그마저도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싫어 왁스를 잔뜩 묻힌 앞머리는 특히나 남성적 향취가 물씬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옆에 있던 소년이 대답했다. 담배에 맺힌 불씨를 탐스럽게 쳐다보는 것과는 별개로 몹시 앳된 얼굴을 지닌 소년이었다. 딘의 배꼽 높이 정도에 키가 닿는 소년은 체구는 작았지만, 눈이 몹시 총명했고, 영특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소년이 담배의 불씨에서 딘의 꺼뭇꺼뭇한 인중 근처로 눈길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어디로 갈 거예요?”


“일단 이 빌어먹을 공사 소리가 들리지 않는 데까지 나가자. 그래야 비로소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정해졌네요, 그럼. 1번지의 술집으로.”


소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딘은 코트의 주머니에 한 손을 꽂고서 도로로 나가 택시를 세웠다. 그리고 뒤이어 사방 가득 너저분한 래커칠로 뒤덮인 차 한 대가 딘의 앞에 다가와 섰다. 멀쩡한 부분은 회사 로고가 박힌 모자 쪽밖에 없었다. 딘이 조수석 문의 손잡이를 움켜쥐자, 소년은 뒤로 가, 문을 열고 작은 몸을 밀어 넣었다.


“목적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기사는 말이 짧았다. 딘은 조금도 불쾌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건넸다.


“시티의 끝으로 갑시다.”


선글라스를 낀 기사가 알을 살짝 내리며 고개를 돌려 딘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본인만의 견적 내기를 끝마쳤다는 입 모양을 걸어 올리며 말했다.


“거긴 뭐 하려고?”


“가지 않으시겠다면 내리겠습니다.”


단호히 말한 딘은 금방이라도 내릴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기사가 한발 물러서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는 길이야 수십 갈래도 알지. 그놈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길이 변하는 건 아니니 말이야. 그렇지만, 이유가 궁금하달까.”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단지 공사 소리로 가득한 이 추악한 동네를 벗어나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때, 뒷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던 소년이 입을 거들었다.


“제가 가고 싶다고 했어요! 오늘은 모처럼 가게 문을 닫기로 한 날이거든요!”


“가게?”


‘가게?’


기사와 딘이 각각 겉과 속으로 되물었다.


“네! 저희 집은 옷가게를 하는데, 손님이 끊겼거든요. 그래서 시장조사를 위해 멀리 나가 보려는 거예요!”


옷을 판다는 소년의 말에 기사가 선글라스 너머의 눈으로 소년과 딘의 옷차림을 살폈다. 그리고, 그를 들은 딘은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어금니를 세게 베어 물며 창밖 먼 곳으로 눈길을 던지는 딘의 옆으로 소년은 들으라는 듯이 말을 계속 뱉어냈다.


“원래는 장사가 아주 잘되는 집이었어요! E구역에서 옷을 지으러 올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놈들이 물러난 이후부터 손님들이 점점 발을 들이지 않았어요. 저희 가게는 옷감에 돈을 아끼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그래서 지금 살 궁리를 찾기 위해 떠나는 길인 겁니다.”


딘은 백미러를 보며 말했다. 소년이 먼저 깜찍하게 한쪽 눈을 감았다. 딘은 이번만큼은 참지 못했다.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고, 입을 가리는 손이 그다음이었다. 운전대를 잡음과 동시에 고개를 앞으로 되돌린 기사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되려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뱉어놓았다.


“그래, 장사꾼들이었나. 알고 있겠지만, 최근 들어 장사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고 나서겠다는 놈들이 부쩍 늘어났어. 정확히는 가지고 있는 것을 팔겠다는 놈들이지. 다들 모아둔 돈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일 거야. 조폐마저 끊겼으니 더더욱 불을 만난 기분이겠지. 이해는 가. 하지만 나는 모든 직업이 고귀하게 남았으면 좋겠거든.”


“조폐가 끊겨요?”


딘은 태어나 그러한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인 것처럼 불균형한 음정으로 목소리를 내었다. 자칫 오버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찰나의 기억이 평생의 인상을 결정하듯, 딘은 지금이 도착지까지의 기사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적기라고 확신했다.


“날 떠볼 이유는 없을 테고. 진심이로군?”


“떠보다니, 그럴 리가요. 정말입니다. 정말 지금 처음 들었어요. 저희는 외곽에서도 꽤 깊숙한 위치에 자리를 채우고 있거든요. 그래서 소식 닿는 것이 늦습니다.”


“번지수가 어떻게 되길래?”


“58입니다.”


숫자를 들은 기사가 납득한 얼굴을 띠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58이라고? 젊은 사람이 멀리에도 떠밀려 사는군. 처음부터 그곳으로 배정받았나?”


“네, 처음부터.”


그리고 얼마간 기사는 조용했다. 할 말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앞으로 할 말에 대해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창문 바깥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공사 현장의 모습이 새들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안개 자욱한 층 안에서 작은 형체로 색이 바랜 노란색 안전모들이 그곳에 터를 잡은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딘은 다시금 백미러를 흘겨보았다. 소년은 창 쪽으로 고개를 꺾어 놓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딘의 입꼬리가 다시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딘은 그때가 돼서야 새벽부터 긴장하고 있던 몸이 풀렸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머릿속으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흔들림 없이 3초간 유지할 수 있는 상태. 딘은 그쪽 방면에 있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대상에 제한이 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현실에서 본 것이든, 꿈속에서 본 것이든, 한 번 눈에 각인한 사물은 언제든 뚜렷하게 그릴 수 있었다. 딘은 백미러를 주시하고 있던 눈을 거두어 기사의 오른뺨을 슬쩍 바라보았다. 기사는 옆자리를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결백을 주장하듯이 눈가 밑으로 일말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쳐다보면 고개를 돌리려고 했는데, 라고 딘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서 딘은 아예 대놓고 기사의 외관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오십, 아니, 육십. 턱에 여유로운 살집이 없고, 얼굴 앞면이 특히 햇볕에 그을린 걸 보니, 평생 운전대 하나만을 잡고 살아온 건가. 모니터 하나 올려놓지 않은 거로 봐서는 기계를 싫어하는 부류일 테고. 그리고 또 하나. 이 노인, 실은 엄청난 말재간의 소유자일 거야.


딘은 거기까지를 생각했다.


“택시가 꽤 멋들어지게 생겼던데요?”


그러자 기사가 침묵을 깨는 후덥지근한 웃음소리를 내며 화답했다. 크지 않은 크기였다.

     

“허허허, 아들이 깰 텐데?”


“아들이요?”


“아들이 아니었나?”


기사가 오른 어깨를 돌리듯 뒤로 밀어 보내며 말했다.


“아, 동생입니다. 나이 차이가 꽤 나죠.”


그 뒤로 딘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웬만해선 깨지 않을 겁니다. 어제 새벽을 꼴딱 지새웠거든요.”


“왜, 공사 소리 때문에?”


“네. 근래에 들어서는 거의 밤낮 할 거 없이 일을 해대니까.”


“불안해서 그러는 걸 테지.”


“누가 말입니까?”


딘의 한결같은 되물음에 기사가 처음으로 조수석을 향해 고개를 돌려 왔다. 진심 어린 안타까운 눈빛을 보이고 싶었거나, 대화 내도록 말귀 어두운 멍청이를 자처하는 딘에게 싫증이 났거나. 일단, 딘에겐 다행스럽게도 후자는 아니었다.


“다. 전부가 불안해하는 중이지. 자네만 해도 그렇지 않나? 동생 말대로 이 해 뜰 무렵부터 시장조사에 나섰잖아. 그놈들 빈자리는 생각보다 기쁜 일이 아닐지도 몰라. 언제고 다시 마음을 바꿔 먹고 우리를 불태우러 올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런 것치고는 분위기가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조용하다고? 아니, 나는 반대로 생각하네. 너무도 밝아. 그렇기에 다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에 잡아먹힌 게 아니겠는가.”


기사의 말을 들은 딘은 창을 절반가량 내린 뒤, 기사가 앉은 쪽으로 다리를 꼬았다. 그리곤 조용히 코트 안쪽의 담뱃갑을 흔들어 가장 길게 삐져나온 개비를 뽑아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기 전, 딘은 기사에게 말했다.


“다른 뜻은 아닙니다만, 통찰력이 좋으시군요.”


그에 기사가 좀 전에 지나간 물음의 대답을 뱉어놓았다.


“그날 아침, 더럽혀진 택시 꼬락서니를 보니 알겠더군. 내가 사는 곳이 얼마나 추잡하고, 얼빵한 녀석들이 모여 있는 데인가를.”


“회사에선 뭐라고 하던가요?” 

    

딘은 물었다.


“좋아했다고 하면 믿을 텐가?”


기사가 대답했다.


“이제는 가능할지도요.”


딘은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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