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라는 병 (2018.06.27 수요일 흐림, 마음처럼 낮은 기압)
수술 이후,
이럴 수 있다고 했다.
몸이 어쩌면
예정된 후유증을
겪어 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호르몬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지.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요즘 들어 감정의 기복과
이유 없는 우울이
가끔씩 나를 잠식한다.
혹시 내가
조금 달라지고 있는 건 아닐지,
그 변화가
나를 낯설게 만들지는 않을지
그게 걱정된다.
“죽음으로만 끝낼 수 있는 질병은 절망이다.”
— 키르케고르 —
예전에 이 문장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오늘 다시 마주하니
마음에 닿는 깊이가 다르다.
절망은
단순히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가 아니라,
나를 서서히 고립시키는 병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절망이 깊어지면
살고는 있지만
삶과의 거리가 생기고,
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그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혼자 남겨진 상태.
죽음으로만 끝낼 수 있다고 한 말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절망은 우울이라기보다
나와 맺고 있던 모든 관계에서
나 자신을 끊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절망에 머물지 말아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불행한 상황이
좌절로 굳어지지 않도록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가 말했듯
절망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자신으로써
살아가야 되는 일인 것 같다.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건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해야 되는 일 아닐까.
오늘의 가라앉음도,
흔들리는 마음도,
정리되지 않는 감정도
절망 그 자체라기보다는
갑작스러운 병 앞에서
삶이 잠시 방향을 잃은 상태일 뿐.
그 흔들림 덕분에
나는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앞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더 천천히,
그러나 이전보다 분명해지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지만,
지금의 나는
절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길 위에 서 있다.
그 시간을 지나
다시
내 삶 쪽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