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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pr 14. 2022

잊고 있던 상처를 다시 들추다

다시 마주할 수 있던 건, 용서라는 용기

 나는 이번 졸업작품을 통해 나에 대해 차근차근 하나씩 짚어보고 들추어보는 중이다. 이 작품은 '나'밖에 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이기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상태를 마주하게 되었다. 왜 나는 요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이뤄졌나. 나는 왜 자신감이 있게 되었나.


나는 왜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는가.


옛날의 요가를 하기 전의 나는 굉장히 몸이 삐뚤 했다. 아마 브런치 첫 글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나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팔자를 넘어선 180도의 벌어진 발과 우스운 걸음걸이 그리고 남들보다 퉁퉁했던 허벅지와 하체. 체육시간 때는 다른 또래 여자애들보다 훨씬 뻣뻣했던 나의 몸까지 어느 것 하나 정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서 여자애들은 놀려대기 바빴다. 어쩔 땐 내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펭귄 같다고도 했고, 어쩔 땐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대놓고 손가락질을 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그 이상의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것을 무언의 손길, 억압으로 느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도 계속 타인의 시선들을 신경 쓰고 나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그때 당시엔 그런 나의 상태를 잘 몰랐지만 말이다.


그런 내게 크나 큰 전환점이 되어준 요가는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져왔고 나는 요가를 통해 천천히 느리지만 착실한 변화를 통해 성장해갔다. 그것은 몸도 마음도 같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몸은 좋아지기 시작했고 예전보다 많이 자신감이 생겼으며 밝아졌다. 마음 또한 더 이상 우울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계속 이야기 발전과 시각화 작업을 위한 과정 중에서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는 점. 더 이상 나의 몸에 대한 타박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 나를 나로서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 굉장히 크나 큰 변화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러한 억압의 시선들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나. 처음부터 시작되진 않았을 터이다. 내가 기억이 나는 바로는 고등학교 2학년 때도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던 친구들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가득했다. 계속 엄마에게 그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에 대한 분노를 뿜어댔다. 시선에 대한 의식은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응어리로 자리 잡고 있던 터였다. 그들의 시선과 조롱은 나를 울게 만들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염려하여 요가원으로 데려가신 것이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착실히 요가를 하면서 세월이 쌓이고 나는 어느새 대학에 들어가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부턴 그 시선들에 대해서 조금씩 잊고 있었다. 그 친구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어느새 깎이고 깎여서 더 이상 내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큰 내적 변화가 가능했던 것일까.


요가를 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친구들을 용서했던 터였다. 요가 철학을 배우면서 용서에 관해도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뒤늦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남을 계속 증오하는 것은 결국 나를 과거에 얽매여 있게 하는 것과 같다고. 아무리 상대가 밉고 저주를 퍼붓고 싶어도 그를 용서하고 흔쾌히 내 속에서 보내주는 것. 그것이 곧 아힘사, 우리가 배웠던 사랑이라고. 더 이상 나 자신을 과거에 속박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을 통해 나 스스로를 폭력에서 해방시키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비폭력이었다.


초등학생 때 그리고 중학생 때 나를 놀리고 무언의 손짓과도 같은 불쾌한 억압의 시선들을 보냈던 그들을 나는 내 속에서 이미 보내준 터였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그 시선들에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그들을 용서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말라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도록. 나의 몸과 마음이.


요가를 통해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많이 단단해져 있었다. 내가 이토록 강인한 사람이었구나.


새삼, 다시 느꼈던 충격과 깨달음이었다. 졸업작품을 위해 나에 대해 다시 돌이켜보니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의 상태였다.




상처는 아프지만 아물 수 있다.
나는 용서라는 약을 발랐고, 그 약을 통해 나의 마음의 상처엔 새 살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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