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 썰수첩 #50

“하고 싶은 말만 하시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 참고 사항

구급대원 썰수첩은 구급대원들이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쓴 글입니다.


‘요양 병원, 90대 후반의 할아버지 호흡곤란’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한다.

호흡수 30회 이상, 체온 39.0, 산소포화도 75%.

병원 당직 간호사 말로는 며칠 전부터 기침과 미열이 있어 보존적 치료했다고 한다.

미리 요양 병원에 도착해 구급대원을 기다리던 환자의 아들이 구급차에 탑승한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90대 남성의 아들인, 70대 할아버지.

행복 구급차가 도로의 갓길에 주차한다.

구급대원들은 환자에게 산소마스크로 산소를 주며 병원 섭외를 시작한다.

구급대원1이 병원에 직접 전화하기 직전 보호자에게 물어본다.

“보호자분, 할아버지 적극적인 처치 하실 건가요?”

보호자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아버지의 허벅지와 정강이를 주무르다가 말한다.

"적, 뭐요? 저극?"

구급대원1이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 천천히 설명한다.

“할아버지가, 상태가, 안 좋아지면요, (입에 주먹을 대며) 인공호흡기를 달기도 하고요, 수술을 할 수도 있고요, 이런저런 약물 치료를 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만약에 심장이 정지되면, 심폐소생술도 할 생각이 있냐는 거예요.”

보호자가 귀 기울여 듣다가 말한다.

"안 들려요."

구급대원1이 잠깐 한숨을 쉬고 천천히 큰 목소리로 말한다.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할아버지를 위해 모든 처치를 다 할 건가요? 아마 병원에 전화하면 물어볼 거라, 저희가 미리 물어보는 겁니다.”

보호자가 말한다.

“아. 잠시만요, 저도 생각도 못 한 거라, 가족들에게 물어보고요.”

천천히 자신의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한참 후 가슴 안쪽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구급대원2가 말한다.

“그럼 저희는 병원 알아보고 있을게요.”

구급대원들 둘은 환자를 관찰하며, 병원 선정을 위해 병원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십 수어 분 동안 전화했던 병원에서 모두 '진료 불가' 통보받는다.

“반장님, A 병원이 상급 병원 가라고 하네요.”

“B 병원은 퓰모(호흡기내과의 약어)는 신환 못 받는대.”

“지금 중환자실 없다고 C 병원 안된대요.”

“거기는 기대도 안 했다.”

“여기는 DNR 동의하면 오라고 하길래 알아보고 다시 알려준다고 했어요.”

병원에 전화하던 구급대원1이 평온한 얼굴로 전화 통화하는 보호자를 본다.

지친 표정과 함께 마스크 안으로 한숨을 쉰다.

그때 보호자가 통화를 마치고 말을 건다.

“예에, 소방관님, 제가 형이랑, 동생이랑 통화를 했는데요. (본인 주먹을 인공호흡기처럼 입에 갖다 대며) 인공 산소 호흡기는 안 하고, 닝겔만 해달라고 하네요.”

구급대원2가 혈당을 확인하려다가 보호자에게 다시 물어본다. (`0´)

“인공호흡기는 안↗하고, 약물만 해달라↗고요? 그럼 다른 것들↗은요?”

보호자가 (손사래 치며) 말한다. (· ω ·) σ

“예에, 편히 보내드리려고요, 고생 안 시키시고. 닝겔만 맞고 오자고 합니다.”

구급대원1이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삼키고 있다는 표정으로 보호자에게 설명한다. (=n=)

“할 거면, 다 하시고, 안 할 거면, 다 하지 않으셔야죠. 이거, 어르신. 어르신 입맛대로 고르는 거 아니에요. 원하는 것만 골라 할 수 있는 거 아니라고요. 다 연결되어 있다고요.”

할아버지 보호자가 평온한 표정으로 말한다.

“에? 괜찮아요. 괜찮데요.”

구급대원1이 사무적 친절함으로 말한다.

“어르신, 뭐…. 뭐가 괜찮은 건가요?” ಠ_ಠ

결국 약 5분간의 논쟁과 설득, 설명 끝에 보호자가 인상을 쓰며 말한다.

(손사래 치며) “그럼 다 해주쇼. 아무 곳이나 갑시다.”

상황실과의 협조로 10곳의 병원 섭외 전화 끝에 행복시로부터 70km 밖에 있는 근성시 응급의료센터에 연결이 된다.

구급대원은 장거리 이송과 병원 측 조건에 차근차근, 끊어 설명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 멀리 있는 병원에 가실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거기서, 몇 가지 조건을 걸었어요. 무조건 보호자 상주, 자기들도 호흡기내과 의사 없어서 전원 갈 수도 있는 거. 입원 치료하다가 갑자기 행복시로 전원 간다고 해도, 행복시 병원이 요즘 환자 전원 안 받아줘서 못 보내 준다네요. 어르신. 이해되셔요?”

어르신이 궁금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럼, 거기는 산소 호흡기 떼는 거요? 닝게루만 맞고?”

구급대원1, 2가 말을 잇지 않는다. (¬_¬)

구급대원1이 마스크 안으로 작은 한숨을 쉰다. 창문 밖을 잠깐 멍하니 보며 다시 한숨을 쉰다. (・_・)

구급대원2가 환자의 보호자 할아버지에게 다시 설명한다.

보호자 할아버지가 똑같은 답을 하자 창문 밖을 보던 구급대원1이 눈을 꾸욱 감았다 뜨며 말한다.

“어르신, 저, 보호자분 아들이나 손자 있죠? 통화 좀 연결해주세요. 직접 설명하게요.”

구급대원들은 보호자 분 중 가장 젊은 보호자에게 전화로 설명한다.

젊은 보호자는 구급대원의 말을 이해하고 할 수 있는 대로 해달라고 한다.

모든 설명과 동의가 끝난 후 행복 구급차가 관외 이송을 시작한다.

병원에 환자를 이송 후 귀소하는 길 구급대원1이 보조석에 등을 완벽히 밀착한 채 눈을 감고 한숨을 쉰다.

구급대원2가 말한다.

“우와, 어르신 진짜! 하고 싶은 말만 하시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같은데요?”

(^◡^)っ


※ 구급대원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이송병원 선정이 신속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 응급실 처치를 '서브웨이 토핑 고르 듯', '피자 토핑 고르 듯' 할 수 없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주세요.

※ 보호자가 내세우는 이상한 조건이 많을 수록 갈 수 있는 병원 선정 선택지는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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