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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김세원 Mar 18. 2020

서울에서 먹다, 역사의 맛

글을 쓰며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내 인생의 절반, 아니 팔 할 이상은 서울과 맞닿아 있다. 상상 밖의 전개로 서울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동안,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수능에 바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품었던 한 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왜 이러한 모습의 음식을 먹고 있을까? 여기에 우리가 놓친 역사가 있다.


민족주의 사학.

거두절미하고 이야기를 풀자면, 역사를 배우면서 스스로 가장 머리 아팠던 대목이었다. 식민지 시기에 처한 한국인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 주자는 민족주의 사학의 탄생 의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구한말을 지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반대급부로 생겨난 한국인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마도 그 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후세대가 배워야 할 근현대사가 완전히 꼬여버린 분기점이.


다행히 시간은 흘렀다. 어느덧 1945년 8월, 무사히 광복이 되었고, 나를 비롯한 현대 한국인은 이제 '국뽕'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할 만큼 성숙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틈만 나면 부글부글 끓는 '국뽕'의 순간이 온다. 2002년 월드컵, 하계 및 동계 올림픽, 그리고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에 기생충까지. 정치를 개입하지 않아도 될 만한 여러 분야에서 여전히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강조하는 사회다. 기막히게도 그 자긍심을 갖기에는 뿌리가 너무나 먼데도.


서울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가 잘 몰랐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역사의 맛을 찾아서


대학에 와서 역사를 전공하기까지, 어릴 때부터 국사와 근현대사 교과서를 볼 때마다 궁금했다. 전근대사와 근현대사를 다루는 비정상적인 페이지 분배부터 항상 큰 의문이 들었다. 전근대사는 무려 장장 서너 개의 챕터에 할애하고 있으면서, 근현대사는 달랑 한 챕터, 때로는 현대 한국과 미래 한국에 묻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근대 역사나 문화재, 이야기의 단면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란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드디어 근현대사 교과서가 생겼다. 지워진 역사를 파헤칠 열쇠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고3을 지나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내 궁금증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내가 배운 근현대사는 한국인이 얼마나 처절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 왔는지, 어떤 핍박을 당하며 분투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3분의 1, 망하기 일보 직전의 구한말 조선 왕정의 실정 및 몸부림이 3분의 1, 나머지는 현대 한국이 되기까지 다사다난했던 민주공화정 수립의 사투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사이에 맥락은 조금도 이어지지 않았다.


흡사 한국의 근현대사는 조선 왕정과 근대 경성, 그리고 광복이 된 이후 미군정 시기, 다시 지나서 육이오 전쟁과 전후 이야기, 그리고 민주공화정을 수립하기까지의 이야기가 그야말로 따로국밥 속 밥과 고깃덩어리처럼 뒹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떠한 맥락도 찾을 수 없었고, 교과서의 모든 기술은 파편적인 내용에 불과했다.


내가 최종적으로 대학교에서의 삶을 한중일 근현대 교류사 공부에 매진한 건, 어쩌면 고등학생 시절 해결하지 못했던 저 기막힌 의문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만난 역사의 맛, 첫 이야기는 부암동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나는 지워진 역사,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오랜 꿈이었다. 애당초 제일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도, 전근대 시대에서는 이렇게 좋았던 한중일 관계가 대체 근대를 지나 현대에 와서는 서로를 비하하는 혐오의 관계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당연히 인접국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이고, 딱히 그렇게 되면 누가 원조라고 말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은 결국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최근에 역사를 분석하는 지표로서 주목하기 시작한 분야가 '미식'이다. 음식의 원형을 따지고, 그 변화와 추세를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는 역사가 있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통틀어 동북아의 역사, 우리의 교과서에서 지워졌던 이야기가 바로 한 그릇의 음식에 있었다.


시대가 흘렀고, 세계는 이제 '지구촌'이라는 별칭으로 부를 만큼 가까워졌다.

평생 단일 민족 이야기만 할 것 같았던 한국 역시, 어느덧 다인종 국가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에 온 외지인의 역사

일본에 간 한국인의 역사

중국에 간 한국인의 역사


이 모든 이야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담긴 한 그릇의 음식을 찾아서.

그래서 나는 지금, 서울에서 먹고 있다.

잃어버린 한중일 동북아 교류사의 맥락을 찾기 위해.


여행작가 김세원이 펼쳐나갈 서울에서 찾는 맛있는 역사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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