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갈등 관리가 어떻게 한국의 26년 건설 악몽을 예방할 수 있었을까
의정부에 위치한 장암 워터파크 복합단지는 건설 분쟁 실패의 기념비적 사례다.
1999년 야심 찬 온천 리조트 개발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파산, 다중 소유권 이전, 수십억 원의 손실을 포함한 ‘26년간의 법적 미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장암 워터파트 사건”을 통해 사전적 갈등 관리 위원회(CMC) 프레임워크의 구현이 어떻게 건설 분쟁을 예방하고, 경제적 기회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지를 가설적으로 검토해 본다.
장암 워터파크 사건은 건설 갈등이 관리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해결 불가능한 다자간 분쟁으로 확산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케이스다.
이 프로젝트의 연대기는 마치 법정 스릴러를 연상케 한다. 원래 개발업체인 래전산업이 1999년 온천을 발견하고 개발에 착수했지만 2001년 파산했다. 롯데건설이 2009년 건설을 완료했지만 1,250억 원의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 시설은 채권자들이 법정에서 싸우는 동안 9년간 방치되었다. 홍콩 사모펀드가 결국 감정가의 83% 할인된 가격으로 복합시설을 인수했지만, 2025년 재개장한 현재까지도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남아 있다. 자세한 경과는 Ep. 1 참조
이러한 파멸적 결과는 사실 예방 가능했다. 즉, 사전적 분쟁 예방 메커니즘이 존재했고, 잘 작동했다면 이런 분쟁들의 발생은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다자간 건설 분쟁은 장암 워터파크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대부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즉, 한 당사자의 재정적 어려움이 연쇄적으로 프로젝트 네트워크 전체에 파급된다. 이는 래전산업이 2001년 파산하면서 계약업체들이 대금을 받지 못하고 청구권의 도미노 효과를 촉발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음으로, 다수 당사자들은 본질적으로 상호 간에 상충되는 목표를 갖고 있다. 개발업체는 수익을 추구하고, 계약업체는 대금 지급을 원하며, 하청업체는 현금 흐름이 필요하고, 채권자는 담보를 요구한다.
구조화된 조정 없이는 이러한 경쟁하는 이익이 적대적 입장으로 분열되기 쉽다. 마지막으로, 복잡한 계약 구조는 장암 사건의 소유권이 부분적 경매를 통해 분할되면서 분쟁이 분화될 때 법률관계의 혼란을 가중한다.
당사자들의 심리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더욱 확산시킨다.
분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하게 진행되고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해결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꼬이고 꼬이게 된다. 초기의 “계약금액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불만사항이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일반화된 적대감으로 변화하여 타협을 더 어렵게 만든다.
장암 워터파크 케이스는 이러한 당사자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완벽하게 모델케이스다. 2009년 지급 분쟁으로 시작된 것이 유치권, 부당이득 청구 분쟁을 포함한 복잡한 소송들로 전이되어 26년이 걸려서 겨우 대부분의 분쟁이 해소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소규모 미지급 금액이 남아 분쟁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갈등 관리 위원회(CMC)는 ‘사후적 분쟁 해결’에서 ‘사전적 갈등 예방’으로의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다.
카리브해 33개국 중재센터(OHADAC)의 CMC 시스템과 세계은행 분쟁회피위원회와 같은 성공적인 구현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메커니즘은 당사자들의 입장이 굳어지기 전에 새로운 갈등을 모니터링하고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 프로젝트 시작부터 중립적 전문가를 프로젝트에 포함시킨다.
CMC 모델은 세 가지 통합된 수준에서 작동한다.
먼저 건설단계에서 위원회는 정기적인 현장 방문을 실시하고,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검토하며, 확산되기 전에 잠재적 마찰 현장을 식별한다. 장암 식당 시설이 2011년 미지급 채무로 인해 경매에 나왔을 때, CMC가 있었다면 이러한 분할 위험을 조기에 파악하고 소유권 분할을 허용하는 대신 포괄적 해결을 촉진했을 수 있다.
CMC는 구조화된 의사소통 원칙을 가지고 공동 문제 해결 워크숍을 통해 이해관계자의 인센티브를 조정한다. 롯데건설과 후속 소유자 간의 적대적 관계는 협력적 해결책 모색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또한 CMC는 당사자들의 재판청구권을 보존하면서 프로젝트 추진력을 유지하는 구속력 있는 임시 결정을 제공하여 장암을 괴롭힌 수년간의 마비를 방지했을 수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장암의 실패와 명백히 대조를 이룬다.
수천 명의 이해관계자와 함께 93억 2,500만 파운드 규모의 137개 별도 프로젝트를 관리하면서, 올림픽은 최소한의 분쟁으로 모든 경기장을 정시에 그리고 예산 내에서 완공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독립분쟁방지패널(Independent Dispute Avoidance Panel-IDAP)을 통한 사전적 갈등 관리를 통한 포괄적인 분쟁 회피 메커니즘을 갖고 있었던 덕이었다. 장암 워터파크를 훨씬 능가하는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문제들이 실시간으로 협력적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분쟁 절차는 “매우 제한적으로” 발생했다.
(이러한 분쟁예방위원회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도 성공적으로 분쟁을 미연에 예방했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홍콩국제공항의 대규모 건설 프로그램은 분쟁위원회의 조기 도입을 통해 성공했다.
7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이 여러 계약에 걸쳐 진행상황을 모니터링하여 분쟁을 방지했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수십 년이 아닌 몇 주 내에 해결하여 프로젝트 추진력과 이해관계자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분쟁위원회는 1980년대 온두라스 El Cajon 댐, 1990년대 영·불 해저터널, 2000년대 중국 Ertan 수력발전소 등 메가프로젝트에서 분쟁을 방지하는데 빛을 발했고, 1995년 세계은행 표준입찰문서에 3인 Dispute Board가 의무화되고, FIDIC표준계약서에도 삽입되기에 이르렀다(명칭은 Dispute Board, 이하 “DB”).
CMC 또는 DB(이하 “분쟁예방기구”)가 가져오는 금전적 이익은 압도적이다. 업계 데이터에 따르면 건설 소송 비용은 미국에서만 연간 평균 40–120억 달러에 이르며, 개별 분쟁은 평균 15–16개월이 소요되고 수백만 달러의 법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미국의 경우 디스커버리 비용만 수십만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이에 반해 분쟁예방기구는 프로젝트 가치의 약 0.15%의 비용이 들면서 시간 절약과 분쟁 회피를 통해 18:1의 수익을 제공한다는 통계도 있다. 또한 분쟁예방기구 미설치 프로젝트가 설치 프로젝트에 비해 공사 지연 확률이 2.3배, 3개월 이상 지연 확률이 6.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장암의 경우 구체적으로, 분쟁예방기구 구현에는 일부 투자가 필요했을 것이지만 아래와 같은 손실을 방지했다면 아마도 수 백배의 금액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구조화된 지급 메커니즘을 통한 1,250억 원의 미지급 건설비
2,175억 원의 자산 가치 파괴(감정가와 헐값 매각 가격의 차이)
16년 이상의 손실된 운영 수익
26년에 걸친 수십억 원의 법적 비용
측정할 수 없는 평판과 관계 손상
사실 이러한 승수 효과는 직접 비용을 넘어 확장된다. 즉, 건설 분쟁은 유지보수 없이 장기간 현장을 방치함으로 자산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뿐만 아니라 흉물처럼 방치된 장암 워터파크는 의정부 관광 수익, 고용, 경제 개발을 저해했다.
장암의 26년 연대기를 검토하면 분쟁예방기구의 개입이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여러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계약 체결 시 설립된 CMC는 래전산업의 재정적 취약성을 식별하고 에스크로 계좌나 완공 보증과 같은 보호 메커니즘을 구조화했을 것이다. 개발업체가 2001년 파산했을 때, 분쟁예방기구는 계약업체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새로운 소유권으로의 질서 있는 전환을 촉진할 수 있었다.
롯데건설이 1,250억 원의 미지급 수수료를 청구하는 상황에서, 분쟁예방기구는 포기와 소송 사이의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었다. 신뢰할 수 있는 조정인을 통한 당사자들 간 협상으로 단계적 개장 협정, 수익 공유 협정, 또는 브리지 파이낸싱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분쟁이 해소되고 시설 운영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개별 시설이 별도 경매에 나오기 전, 분쟁예방기구의 패키지 딜 등 대안 제시를 통해 통합된 소유권을 유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식당 시설의 별도 매각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경쟁적 유치권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사전적 조정을 통해 완전히 예방 가능했던 내용이다.
팬데믹과 같은 자연적 중단조차 다르게 관리될 수 있었다. 상설 분쟁예방기구는 완전한 포기가 아닌 비용 분담, 임시 폐쇄, 단계적 재개장에 대한 협정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성공적인 분쟁예방기구 구현에는 전 세계 모범 사례에서 도출된 세 가지 기본 요소가 필요하다:
초기 이해관계자 참여는 갈등을 감소시킨다. 분쟁예방기구는 분쟁이 발생한 후가 아니라 계약 형성 시에 설립되어야 한다. 만약 장암 워터파크 사건의 시작부터 분쟁예방기구가 존재했다면 후속 갈등은 최소화되었을 수 있다.
입장이 굳어지기 전에 모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한다. 건설 프로젝트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를 포섭할 수 있도록 포용성 있는 지배구조를 가져간다. 장암의 분쟁은 개발업체, 계약업체, 채권자, 시설 소유자 간의 조정된 문제 해결을 위한 포럼이 존재하지 않았다.
궁극적인 재판받을 권리를 보존하면서 최대한 분쟁예방기구에 분쟁해결 권한을 제공한다. 궁극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분쟁은 법원이나 중재로 가더라도 최대한 프로젝트의 추진력을 유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분쟁예방기구에 주어질 필요가 있다.
참고로 분쟁예방기구의 활성화를 통한 소송사건 수 감소는 역으로 법원의 사건 심리를 충실하게 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영국을 비롯하여 민사사건에 있어 의무적 조정이 있는 국가들은 의무 조정이 없는 국가들에 비해서 어려운 사건에 충실한 심리를 한다.
우리 법원의 경우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어려운 사건에 충실한 사건 심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재 송무 변호사들의 법원의 사건 심리 불성실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아래 글 참조).
한국의 건설 산업은 갈림길에 서 있다.
장암 워터파크 사건의 참사는 사후적 분쟁 해결의 파멸적 비용을 보여주는 반면, 전 세계 사례들은 예방의 우수성을 증명한다. CMC나 DB의 프레임워크 구현은 적은 투자를 요구하지만 분쟁 회피, 관계 유지, 성공적인 프로젝트 완수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제공할 수 있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제안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정된 임계값 이상의 프로젝트에 대해 CMC나 DB 스타일의 분쟁예방기구 메커니즘을 의무화하고, 임시 구속력 있는 결정에 대한 법적 지원을 제공하며, 조정 전문가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업계 실무자들에게 제안한다.
분쟁예방기구를 프로젝트 계약에 포함하는 관행을 만들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옥상옥이라는 이유로, 추가적인 비용과 절차가 귀찮다는 이유로, 우리 사업은 분쟁이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분쟁을 방치하지 말자.
조금 더 비용을 들여 수익성 있는 프로젝트를 적기에 완공하는 것과 돈을 조금 아끼다가 장기간의 악몽에 시달릴 확률을 높이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장암 워터파크 사건은 기술적 실패나 시장 상황 때문이 아니라 예방 가능한 인간 갈등 때문에 26년간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26년간의 법적 다툼은 직접 손실로 수십억 원을 비용으로 치르고 수십 년의 개발 기회를 상실하면서 변호사들만 부유하게 만들었다. 이 결과는 사전적 갈등 관리를 통해 회피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런던 올림픽에서 홍콩 공항까지 복잡한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완수 등 여러 프로젝트에서 분쟁예방기구 프레임워크의 혜택은 증명되었다. 남은 것은 사후적 소송에서 사전적 예방으로 변화하려는 의지다.
모든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는 장암이 1999년에 암묵적으로 내린 선택에 직면한다.
구조화된 분쟁 예방에 적게 투자하거나 파멸적인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26년과 수십억 원 후에, 올바른 답은 더 명확할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의 건설 산업이 분쟁예방기구 프레임워크를 구현할 여유가 있는지가 아니라,
‘구현하지 않을 여유가 있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