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가능합니다.
주치의가 오전 회진을 돌면서 이야기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감정의 홍수가 밀려왔다.
기쁨인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D+3. 나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가져온 작은 가방에 며칠간의 병원 생활 흔적들을 담았다. 처음 입고 왔던 옷은 응급실에서 가위로 잘라져서 버려졌고,
대신 아내가 새로 가져온 편한 옷들이 있었다.
입원할 때는 빈손으로 왔지만,
퇴원할 때는 작은 약봉지 하나가 더 생겼다.
하지만 그 작은 봉지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평생 함께해야 할 동반자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하세요. 서두르지 마시고.
간호사의 당부가 따뜻했다. 나를 지켜봐 주던 모든 의료진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병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문득 생각했다.
3일 전에는 119를 부를지 말지 고민했는데,
이제는 평범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일상이라는 게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나.
병원 현관을 나서는 순간, 3월의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바람이 이렇게 상쾌할 줄 몰랐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바람이었다.
“차 어디에 댔지?”
“저기. 천천히 걸어.”
아내가 내 팔을 부축해 잡아주었다.
예전 같으면 “괜찮다”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 손길이 고마웠다.
주차장까지 가는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가 새롭게 느껴졌다. 3일 전에는 이 길을 생사를 가르는 마음으로 뛰어갔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걷고 있었다.
차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순간,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혹시 운전 중에 가슴이 아프면 어떻게 하지?
혹시 차 안에서 또 응급상황이 생기면?
괜찮아?
아내가 내 표정을 살폈다.
“응, 괜찮아.”
하지만 내심으로는 긴장되었다.
병원에서는 언제든 의료진이 옆에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내 책임이었다.
차가 노원구를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새로웠다.
출근하는 사람들, 학교 가는 아이들, 장을 보러 가는 아주머니들. 모두 평범한 월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저 사람들도 언젠가는 나처럼 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섣불리 안도할 수 없었다.
심근경색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도착했어.
우리 집 앞에 차가 섰다. 평범한 아파트, 평범한 주차장, 평범한 엘리베이터.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보물 같아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층 버튼을 누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3일 전에는 이 버튼을 누르고 나서 죽을 뻔했는데, 이제는 살아서 돌아와 다시 누르고 있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작은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내 침대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집에 들어서자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거실 소파, 식탁, 책장, 심지어 벽에 걸린 시계까지.
같은 공간이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물 한 잔 줄까?”
“응, 고마워.”
아내가 건넨 물 잔을 받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평범한 행동들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물을 마실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금요일에 시술을 했기 때문에 월요일 오전에 퇴원을 했고, 바로 그날 오후에 예정된 중국 오피스와의 컨퍼런스콜 회의에 들어갔다.
내가 컨퍼런스콜에 들어가자 중국 동료 S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Hey, DK, what happened?
Are you OK to join this call?”
“Why did you join the call,
hang off and get some rest…”
당시 이미 그룹헤드까지 내 심근경색 사실이 보고되었기에, 회의에 왜 들어왔냐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며 다들 걱정해 주었다.
“괜찮습니다. 시술 잘 끝났고, 오늘 퇴원했어요.”
“정말요? 너무 빨리 나오신 거 아니에요?”
동료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전화선 너머로 전해졌다. 이런 관심과 배려를 받아본 게 언제였나 싶었다.
“회의는 우리가 진행하면 되니까, DK는 쉬어요.”
결국 그날은 회의를 듣기만 하고 일찍 나왔다.
다행히 그룹 전체가 코로나19로 전체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이후 재택근무를 하면서 재활에 전념할 수 있었다.
새로운 관점: 시간의 소중함
심근경색을 경험한 후 가장 큰 변화는 시간에 대한 관점이었다. 하루하루가 주어진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생겼다. 동시에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도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1년 후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오늘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 이 호흡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습관적으로 후루룩 마셨다면,
이제는 한 모금 한 모금의 온기와 향을 느끼며 마셨다.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냥 보았다면, 이제는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까지 감사하며 바라보았다.
우선순위의 재정립
일의 우선순위도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느껴졌고,
가족과의 시간, 건강 관리, 의미 있는 관계 등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관점의 변화였다.
예전에는 야근을 하면서도 “일이 중요하니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무리 중요한 일도 건강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급한 프로젝트도 가족과의 시간보다 급할 수는 없었다.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업무적인 대화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서로의 안부를 더 깊이 묻게 되었다.
D-12의 그 우연한 검색이 내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 작은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우리 삶에서 가장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하필 그날, 그 시간에 심근경색에 대해 검색하게 되었을까? 왜 하필 그 의사의 체험담을 읽게 되었을까? 우연일까, 필연일까?
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작은 검색이 내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사실이다.
첫날밤, 내 침대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중환자실의 삐삐 거리는 소리도 없고, 간호사가 1시간마다 와서 깨우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히, 평화롭게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걱정도 생겼다.
혹시 밤에 가슴이 아프면?
혹시 새벽에 응급상황이 생기면?
병원에서는 의료진이 24시간 지켜봐 주었는데,
이제는 정말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했다.
아내가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깨워.
절대 혼자 참지 말고.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혼자가 아니구나. 함께 지켜봐 줄 사람이 있구나.
그렇게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스텐트 두 개와 함께, 약봉지와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였다.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
재발을 방지한다는 것. 모든 것이 새로운 배움의 과정이었다.
과연 나는 이 새로운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독자 이해도 체크: 심근경색 후 퇴원은 치료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입니다.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심리적 적응 과정이 필요하며, 조심스러운 일상 복귀와 함께 생활습관의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의료진과 가족의 지원을 적극 활용하는 것입니다.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