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쯤 퇴원하시죠.
주치의의 말을 듣는 순간, 기쁨과 함께 묘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텐트 두 개와 함께,
그리고 아직 풀리지 않은 수많은 의문들과 함께.
D+3일. 몸은 확실히 좋아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고통은 거의 사라졌고,
혈관확장제 투여도 중단되었다.
이제 먹는 약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퇴원 전에 몇 가지 검사를 더 해야 해요.
간호사가 기다란 검사 목록을 들고 왔다. 마치 자동차 종합검사처럼 내 몸의 모든 부분을 점검하는 것 같았다.
우선 재활센터에서 경사진 트레드밀 테스트를 받았다.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조금만 더 빨리 걸어보세요.
재활 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속도를 높였다.
예전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강도였는데,
지금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혹시 또 가슴에 통증이 올까 봐,
혹시 심장이 다시 멈출까 봐.
다행히 별 이상 없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다음은 본격적인 검사들이었다.
경동맥 초음파: 목의 동맥을 확인해서 뇌혈관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했다. 차가운 젤이 목에 발려지고, 초음파 탐촉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모니터에는 혈액이 흘러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심장초음파: 가슴에 또다시 차가운 젤. 이번에는 심장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판막들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 심장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모습이 화면에 생생하게 나타났다.
발목상완지수 검사: 팔과 다리의 혈압을 동시에 재서 말초동맥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였다. 양쪽 팔다리에 혈압계가 감기고, 동시에 “쓸슉” 소리와 함께 조여왔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심전도는 24시간 내내 모니터링 중이라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오늘 저녁에 퇴원하면 안 될까요?”
병실에 있는 게 답답해서 물어봤지만,
단호히 거절당했다.
“하루 더 지켜봐야 해요. 서두르면 안 돼요.”
병실로 돌아와 아내가 가져다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뒤쪽 침대의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우어, 이어이 어이 아어?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의미가 있었다.
“이거 풀어, 기영이(아마 자식 이름) 어디 갔어?
자음이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드시고 이도 많이 빠져서 그런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 손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 아마 무의식 중에 의료 장비를 만지실까 봐 그런 것 같았다.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었다. 의식은 또렷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말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
나는 운이 좋았다. 적어도 의식도 또렷하고,
말도 할 수 있고, 움직일 수도 있었다.
퇴원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었다.
왜 하필 나에게?
주치의는 명확했다.
“LDL 콜레스테롤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다른 위험 요인들은 별로 없으니까요.”
하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작년 건강검진에서 LDL 수치가 높긴 했지만, 주변에 나보다 더 높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왜 멀쩡한 거지?
심장재활의학과 교수님은 오히려 다른 반응이었다.
"원인을 잘 모르겠네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은데… 가족력이 없는 게 확실한가요?”
두 전문의의 다른 의견.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혹시 현대 의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신의 섭리 같은 것이?
변호사로서의 습성인지, 증거를 찾고 싶었다.
작년 10월 건강검진 데이터와 이번 응급실 데이터를 꺼내놓고 비교 분석을 시작했다.
마치 범죄 수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용의자는 내 몸이고,
피해자도 내 몸이고,
수사관도 나였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고지혈증 전문가인 조홍근 심장내과 전문의의 자료들을 찾아 읽었다.
마치 의학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었지만,
이번에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
앞으로의 기록은 이 수사의 여정이 주된 내용이다.
미리 결론을 먼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10개월 만에 급속히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고,
급성심근경색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상태였다.
단지 내가 몰랐을 뿐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해결책이 너무나 뻔했다는 점이었다:
과식하지 않기 (오버 칼로리 피하기)
포화지방, 정제된 탄수화물, 당분 줄이기
일주일에 최소 3일, 30분 이상 숨 찰 정도의 운동
결국 다 아는 건데 안 해서 이렇게 된 것이었다.
허탈했다. 동시에 화가 났다.
왜 진작 실천하지 않았을까? 왜 과신했을까?
책을 읽고 계신 여러분,
지금 당장 최근 2년간 건강검진 결과를 찾아보세요.
위험 신호 4가지:
LDL 콜레스테롤 150 이상 또는 그 언저리
중성지방 140 이상 또는 그 언저리
총콜레스테롤에서 HDL을 뺀 수치 180 이상 또는 그 언저리
위 수치들이 12년 사이 급격히 증가하여 위 수준에 이른 경우
4가지 모두 해당되시나요?
→ 지금 당장 병원에 가세요. 시한폭탄입니다.
1가지 이상 해당되시나요?
→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맨몸 스쿼트 100회부터 시작하세요. 바빠서 운동 못한다는 건 핑계입니다.
잠깐 책상에서 일어나 맨몸 스쿼트하는 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부터 과식/폭식을 중단하세요.
<위 수치들의 의미>
1.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150
LDL 콜레스테롤은 소위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며, 혈관벽에 쌓여서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150이라는 수치는 일반적인 정상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2. 중성지방 수치가 140
중성지방은 체내 에너지 저장 형태 중 하나인데, 수치가 높으면 혈액이 끈적해지고 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HDL 콜레스테롤(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3. 총콜레스테롤에서 HDL 콜레스테롤을 뺀 수치가 180
이는 non-HDL 콜레스테롤이라고 부르는데, LDL과 기타 동맥경화성 지단백질을 모두 포함하는 지표입니다. 최근에는 LDL 수치보다도 더 정확한 심혈관 위험 예측 인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4. 2개년도 위 수치들을 비교해서 어느 수치든 급격히 증가해서 위 범위 안에 들어간 경우입니다. 절대 수치도 중요하지만, 변화의 속도 역시 매우 중요한 위험 신호입니다.
그 이외에 한 가지 이상 해당하는 분들은 지금 당장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경우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2019년 10월 vs 2020년 3월 (5개월간의 변화)
총 콜레스테롤: 229 → 238 (약간 증가)
HDL 콜레스테롤: 58 → 57 (거의 변화 없음)
LDL 콜레스테롤: 160 → 152 (오히려 감소)
중성지방: 56 → 142 (2.5배 이상 급증!!!)
Non-HDL 콜레스테롤: 171 → 181 (10포인트 증가)
가장 충격적인 것은 중성지방이었다. 5개월 만에 56에서 142로 2.5배 이상 치솟았다. LDL은 오히려 감소했는데 왜 심근경색이 왔을까? 이 수사의 끝에 심장내과 주치의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고, 재활의학과 주치의가 의아해 했던 결론을 찾을 수 있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 몸은 이미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단지 내가 무시했을 뿐이었다.
퇴원을 앞두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건강하다고 과신하며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한 나 때문에 얼마나 놀랐을까.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갑작스러운 응급실 연락에 얼마나 당황했을까.
회사 동료들에게도 미안했다.
갑자기 업무를 떠넘기게 되었으니.
하지만 가장 미안한 건 내 몸에게였다.
40년 가까이 묵묵히 일해온 내 심장에게,
별다른 관리도 해주지 않으면서 과로만 시킨 것이 미안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남은 인생은 분명히 다르게 살아야겠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이런 다짐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질 수 있겠지?’
인간의 망각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다.
고통을 잊어야 살아갈 수 있지만,
교훈까지 잊어버리면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 생각들을 기록해 두어야 겠다.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고 나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은 의문이 있었다.
정말 모든 게 LDL 콜레스테롤 때문일까?
정말 그것만이 원인일까?
D-12에 갑자기 심근경색에 대해 검색하게 된 그 예감은 뭐였을까? 그 예감이 결과적으로 내 생명을 구했는데, 이것도 그냥 우연일까?
과학적 분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있었다. 그 영역에서 무언가가 나를 지켜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겨울 하늘이 보였다.
며칠 전 죽음의 문턱에서 바라본 그 하늘과 같은 하늘이었지만,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스텐트 두 개와 함께, 그리고 이 소중한 교훈들과 함께.
내일 아침이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과연 나는 이 다짐들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앞으로의 삶이 보여줄 것이다.
독자 이해도 체크: 급성심근경색의 원인은 단일 요인보다는 여러 위험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발생합니다. LDL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혈압, 당뇨, 흡연, 스트레스 등이 상호작용하여 혈관 내 플라크를 형성하고, 이것이 파열되면서 혈전이 생기어 급성심근경색이 발생합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한 위험 요인 조기 발견과 생활습관 개선이 가장 중요한 예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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