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무덤

액자에 관을 짜는 직업

by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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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연관 없는 그림...

액자와 그림

.. 액자가 부러워졌다. 그 애(작품)들은 관에 들어가서 한평생 쉬니까. 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림이 잘나야 하지만 그것은 캔버스의 소관이 아니라 케바케의 상황인 것이다. 문득 하얀 벽에 걸린 액자를 보면서 참 각이 잡혀있다고 생각을 한다. 액자틀에서 나오는 액자집마다 풍겨오는 취향이 그림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때 그 사장님은 참.. 그림을 막 다뤘더랬지 하며. 그분은 참 액자 집도 만들어주고 대단했지라며 떠올린다. 물론, 액자틀은 거의 내가 각각 고른 것이지만.... 자신의 관을 짜는 사람을 그린 마를린 뒤마스의 그림을 찾아본다. 관을 짠다는 게 죽음일 수도 있겠지만, 액자를 의미하기도 하는지 궁금해졌다. 액자의 관을 의미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에 대해서 깊게 알지는 못하기에 어쨌든 그저 관이 액자라면 어떨지... 식의 이야기만 주절거린다. 물을 메타포로 작업한 호크니도 생각이 났다. 더 큰 첨벙이라는 그림이 있다.. 물을 미술의 세계에 비유한 호크니에게 '더 큰' 첨벙은 예술세계에 뛰어든, 적극적인 의지가 담긴 호기로움이나 의지를 보여준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는 그냥 시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책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것 또한 나오게 된 배경이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더불어 마를린 뒤마스 , 그녀 또한 관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의도했건 아니건 나에게 의지의 인상을 주었다. 예술의 의지는 죽음 너머의 영역으로 생의 영역을 넘어서기도 한다고 생각했었다. 생을 시간에 한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어쩌면 공간에 가깝다고 느끼기도 하고. 좋은 예술은 살아가길 잘했다고.. 존재를 긍정하게 한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그저 죽어서 안타까운, 혹은 살아서 기쁜, 감정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신 스스로가 스스로를 그대로 바라보고 시간의 흐름에서 온전히 자각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집에 있는 액자들을 감상하면 그들은 대체로 넓은 창에서 햇빛을 머금으면서 분위기의 흐름을 타는 인상을 준다.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들고 어찌 보면 케세라세라의 느낌마저. 혹은 평화로운 미소를 보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묻어지고 마는 장식이나 안이한 기운을 타파하기 위해서 미술의 이미지가 홀로 점점 강해지는 것인가 생각도 들기도 한다.( 당근 그러하다) 아무튼 집에 있는 나의 그림들은 관을 짜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들은 마치. 나 이제 잘 거야. 오후 편안하지ㆍ 외로운 게 뭐야. 하는 것 같다. 햇빛과 그림자를 드리우며 내가 그들에게 평안을 준 것 같아서.. 뭔가 위안도 된다. 비록 그것들이 역사에 남는 대단한 작품은 아닐지라도... 외로움 없이 관에 누운 모습이 귀엽게도 느껴지고. 하지만 역사에 남는 호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느끼는 것은 미술을 통해서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는 것. 소신을 세계에 던지는 것. 어느 감정으로 그렇게 그린 걸까. 수영장의 비침이 너무 아름다워서 일까. - 무생물이지만 살아 숨 쉬어가는 예술품의 관을 짜는 액자 방 사장님들의 직업이 흥미롭게 보인다. 죽은 것이 아니라. 비록 무생물이지만 영원을 기약하면서 관을 짜는 일. 매력적이다. 예전에는 매우 무료한 일이라고만 여겼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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