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선택
그는 마흔아홉이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딱히 특별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나이였다.
회사에서는 15년 차 부장으로 치였고, 집에서는 무뚝뚝하지만 성실한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주말이면 아내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저녁이면 소파에 누워 뉴스를 보다 잠드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던 평범한 사내였다.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해 겨울, 유난히 칼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자꾸만 속이 더부룩했고, 퇴근길 지하철 손잡이를 잡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피곤했다.
처음엔 그저 만성 위염인 줄로만 알았다.
대한민국 40대 남자라면 누구나 달고 사는 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밤이면 식은땀으로 젖은 티셔츠를 갈아입느라 몇 번씩 잠을 설쳤다.
보다 못한 아내가 겉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여보, 병원 좀 가 봐요.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마지못해 찾은 대학병원.
정밀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마주 앉은 의사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이 떨어졌다.
“말기입니다.”
의사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차분했다.
그 정적이 오히려 선고를 더 날카로운 파편처럼 가슴에 박았다.
“종양이 이미 전이가 많이 되어서 항암 치료를 해도 예후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으니 치료는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모든 소리가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차가운 겨울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숨이 턱 막힐 만큼 시린 감각.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형, 나도 암 이래.”
동생 준호였다.
그날, 형제는 같은 대학병원, 같은 층의 다른 진료실에서 나란히 '사형 선고'를 받았다.
준호는 곧장 싸움을 준비했다.
의사의 처방을 성경처럼 믿었고, 살기 위해 독한 항암제를 몸에 들이부었다.
“형도 같이 하자.
요즘 의학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우리 같이 버티면 돼.”
하지만 형은 끝내 고개를 저었다.
“난… 도저히 못 하겠다.”
“왜? 형 미쳤어?”
“그 고생을 해서 살고 싶지는 않아.”
그 말은 사실 반쯤은 거짓이었다.
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항암제의 독성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자신이 없었을 뿐이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1%의 확률에 기대어 병실에서 소진되느니, 차라리 내 몸의 남은 생명력을 믿어보고 싶다고.
실제로 의학계에서는 무리한 항암 대신 정서적 안정과 자연 치유력을 높여 예상 수명을 훌쩍 뛰어넘어 건강을 되찾은 '예외적 생존자'들의 사례가 있지 않은가.
그는 도박과도 같은 그 길을 걷기로 했다.
실제로 일주일 뒤 병실에서 본 준호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준호는 토했다.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했고, 나중엔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해 쓴 담즙까지 게워냈다.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베개 위에 검은 얼룩처럼 떨어져 나갔다.
준호는 거울 속에 비친 앙상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형, 나 이제 진짜 환자 같지?”
그 억지웃음이 형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결국 형은 병원을 떠났다.
항암도, 방사선도 포기한 채 시골 근교의 작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대신 아침마다 이름 없는 동네 공원을 걸었다.
찬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가만히 서서 뺨에 닿는 햇볕을 느꼈다.
유기농 채소와 현미밥을 한 스푼씩 서른 번 넘게 씹어 넘겼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결국 포기하고 죽으러 간 거래.”
“겁쟁이처럼 도망친 거지.”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남은 하루라도 '인간답게' 숨 쉬며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병원을 벗어나 죽음의 공포 대신 흙냄새와 햇살에 집중하자, 독한 약물에 짓눌려 있던 그의 면역 체계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항암을 거부한 선택이 단순히 포기가 아니라, 몸 스스로가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셈이었다.
하지만 병마는 잔인했다.
어느 날 공원을 걷던 중 갑자기 가슴이 조여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는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앞이 점점 멀어지며 암전 되었다.
‘아, 이렇게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살고 싶었다.
비겁하다고 손가락질받아도 좋으니, 아이들이 커가는 걸 보고 싶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무치게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터져 나왔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그를 보며 의사가 가족들에게 고개를 저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오늘 밤이 고비입니다.”
의식을 잃은 채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그 밤, 기계음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동생 준호였다.
“나도 고통스러워 죽겠는데 아직 버티고 있어.
그러니까 형도 제발 버텨.”
그 목소리가 아득한 어둠 저편에서 한 줄기 빛처럼 날아왔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기적처럼 눈을 떴다.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걸 본 의사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살아남았지만 몸은 넝마 같았다.
화장실까지 걷는 것조차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것만큼 버거웠다.
그제야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첫날은 침대 근처 1미터, 그다음 날은 현관문까지.
하루 10미터, 그다음 날은 20미터.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비틀거려도 벽을 짚어가며 발을 뗐다.
“살아보자.
어떻게든 살아보자.”
그는 매일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그사이 준호는 독한 약물을 이겨내며 종양의 크기를 줄여갔다.
수치상으로는 호전되고 있었지만, 준호의 육체는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느 날, 휠체어에 앉은 준호가 힘겹게 형의 옷소매를 잡았다.
“형… 나 실은 좀 무서워.”
그 강하던 동생의 떨림에 형은 목이 메었다.
“그래도 끝까지 해볼게.
나 정말 살고 싶어.”
겨울이 끝나갈 무렵, 형의 몸에 믿기 힘든 변화가 나타났다.
검진 결과, 종양의 크기가 기적처럼 줄어든 것이다.
의사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서류를 뒤적였다.
의학적으로는 항암 치료를 받은 동생이 살 가능성이 더 높았으나, 오히려 항암의 고통에서 비껴 나 평온을 유지하며 생존 의지를 다진 형의 몸이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이유 같은 건 상관없었다.
그저 매일 걸었고, 햇볕을 받았고, 간절히 살고 싶어 졌을 뿐이니까.
하지만 동생 준호의 시간은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무리한 항암 치료를 버티기에 준호의 심장은 너무 지쳐 있었다.
암세포는 줄었을지언정 삶을 지탱할 기력까지 소진된 탓이었다.
임종 직전, 준호가 형의 손을 꼭 쥐고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형… 형은 꼭 살아.”
형은 대답 대신 동생의 마른 손등에 뜨거운 눈물을 떨궜다.
“형은… 나 대신 끝까지 살아줘.”
그 말을 남긴 채 준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장례를 마친 뒤, 그는 동생이 그토록 걷고 싶어 했던 공원을 혼자 걸었다.
겨울이 물러난 자리엔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봄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나직이 속삭였다.
“준호야, 나 살아 있다.
네 몫까지 숨 쉬고 있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젖은 눈을 닦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
몇 년 뒤, 그는 완치 판정을 받고 병원 로비에서 한 중년 남자를 만났다.
갓 진단을 받은 듯, 절망에 빠져 멍하니 앉아 있는 남자의 어깨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말기라는데… 이제 어떡합니까.”
울고 있는 그에게 그는 다가가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끝이 아닙니다.”
창밖으로 돋아나는 새순을 가리키며 그가 덧붙였다.
“겨울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저도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에필로그
삶이라는 항해를 이어가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거센 풍랑을 만납니다.
그 풍랑의 이름이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묻게 됩니다.
부서져 가는 배를 수리하며 끝까지 파도에 맞서 싸워야 할지, 아니면 이제는 노를 내려놓고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할지를 말입니다.
흔히 항암 치료를 계속하는 것만이 삶에 대한 의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말기라는 이름의 바다에서 억지로 젓는 노는 때로 배를 더 빨리 침몰시키기도 합니다.
독한 약물이 암세포를 공격하는 동안, 우리 몸의 소중한 생명력마저 함께 깎여 나가기 때문입니다.
병실의 차가운 천장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투쟁을 이어가는 것만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반면, 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이 곧 삶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용기 있는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무리한 약물 대신 통증을 어루만지고, 소중한 이의 손을 한 번 더 잡는 '완화 의료'를 선택할 때, 우리 마음은 비로소 평온을 찾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평온함 속에서 어떤 이들은 무리한 치료를 받을 때보다 더 길고 아름다운 황혼을 누리기도 합니다.
생존 가능성이란 단순히 달력에 표시된 숫자의 합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맞추고, 창가에 비치는 햇살의 온기를 느끼며, 지나온 삶을 아름답게 갈무리하는 그 모든 순간의 '질'이 곧 생존의 의미가 아닐까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배가 얼마나 더 멀리 가느냐보다, 그 항해의 끝에 어떤 노을이 지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무리한 사투 끝에 지쳐 쓰러지기보다는, 조금은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
그 평화로운 시간이 어쩌면 우리 생에 주어진 가장 고귀한 '생존'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