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주의자#2
아이의 등하원을 책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의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캐릭터로 나를 대하는데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처음 보는 나를 아저씨, 삼촌, 누구 아빠 등으로 부르고 갑자기 안기거나 웃으며 다가와 질문을 건넨다. 가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받고 난감하긴 하지만.
아이가 다니고 있었던 어린이집을 떠나 새로운 유치원으로 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기존 어린이집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글에서도 밝혔듯 친한 친구들이 많이 떠나버린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한동안 우울했고, 등원을 힘들어했다. 이제 그 시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지난주 목요일 갑자기 예약을 걸어둔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 유치원에는 아이가 친했던 아이가 먼저 이동해 다니고 있어서인지 아이는 빨리 가고 싶다며 연신 기대감을 표했다.
새로운 유치원을 방문해 담임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마치고, 저녁에 다시 한번 아이에게 물었다. "이제 그럼 OO어린이집은 더 안 다니고 새로운 유치원으로 갈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응"이라고 대답하는 녀석이 이상하리 야속하다. 그래도 그동안의 정이 있을 텐데 고민을 1도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워낙 새로운 곳을 좋아하는 아이의 성향이 이렇게 작용을 하는구나 했다. 새로운 유치원으로 옮기는 것으로 결정하고, 기존 어린이집에 알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바로 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유치원으로 첫 등원을 했다.
근데 내 마음이 왜 이럴까? 기존 어린이집 아이들이 계속 눈에 밟힌다. 스무 명에 가까운 아이들 이름을 모두 다 외우고 불러서 알고 있다. 거의 매일 보던 아이들을 못 만날 생각을 하니 아쉽다. 내 자식이 내게 지어주는 미소야 두말할 나위 없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아이의 친구들 역시 그랬다. 착하고 선한 얼굴로 웃으며 내게 다가와 웃는 아이들. 자연스럽게 얻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이제는 자주 받기 힘들 것이다(새로운 유치원은 버스로 등하원을 하기에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아이들의 얼굴과 미소는 유독 잔상이 오래 남는 것 같다. 물론 미소가 아름다운 어른들도 많다. 그러나 가끔 그들의 미소에는 복잡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며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학습된 표현으로 미소가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하거나 어색한 상황에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말 좋지 않으면 잘 웃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순수한 감정의 반사에 가깝다. 즐거우면 웃고, 신기하고 재미나면 웃고, 맛있으면 웃으며 그냥 기분이 좋아도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에는 싱싱함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마약에 가깝다. 나 역시 거기에 중독되어 버렸나 보다. 그래서인지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진다. 이제 아이 하원 후 놀이터에서 만날 아이들을 보면 2배는 더 반갑겠구나 싶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그 미소들을 기억해야지. 그 얼굴들을 떠 올리며 웃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