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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Oct 29. 2023

이화에 월백하고

단편소설 <몫과 나머지>

붓을 꺾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잘못된 것은 맞는데, 누가 잘못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욕심만 많고 노력을 하지 않던 사람인 것을 그때는 알 길이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모두를 위해서 해야하는 노력을 과소평가했다. 나는 힘을 적게 들이고도 잘 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겪어야 하는 역경을 과소평가했다.


지성은 엄청난 재능이나 야망이 없어서 어느 순간 편안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그에게도 이기적인 면이 있었고, 그런 면에서 우리는 닮았다. 지성은 별스러운 존재였지만, 나의 별스러움이 그의 별스러움을 상쇄했다. 내 눈에는, 혹은 나와 있으면 그는 세상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그게 좋았다. 그는 꿈에 나올만한 훈남이나 몸짱이 아니었다. (실제로 몸짱이 꿈에 나온 적은 거의 없다. 가끔 우연히 훈남의 몸매가 좋았을 뿐.) 그는 삶의 전반에 성실한 편이지만 고집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무탈하게 지내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만 한없이 친절했다.




세 번째 전시를 하는 동안 나는 지쳐갔다. 지성과 공동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그동안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를 잘 알지 못했을 때 데이트를 딱 한 번 했었는데 좀 어색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같이 놀다가 집에 데려다주는 사람이 아닌 뉴페이스와 데이트를 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아마 그의 별스러움에 이미 동질감을 느껴서 친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성애적 관심을 호감이라고 표현한다. 일부러 우회적으로 표현한 걸까? 내게는 호감이란 단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내가 지성을 짝사랑한 것은 아니다.


친구 이상이길 바라게  순간은 그와 업무관계를 모두 정리한 후였던  같다. 전부터  되고(?) 싶긴 했는데, 그건 아마도 영신으로부터 도피해보려는 작은 시도였다. 지성이 나를 잡아준다면, 영신을 잡을지 말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오고 가는 길목에서 거의 매일 마주치는 사람과 충분히  지내고 있는데,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고 추가로 만남을 계획하는 수고를 하는 것이 버거웠다. 보다 정확하게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고 그건  사람도 그랬을 것이다. 삶이 피곤하기도 했다.


이런 것이 어른이라면  천천히 자랄걸 그랬다.




영신도 그럴 때가 있었겠지만 (어차피 나는 영신의 본캐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특히 지성은 까칠했다. 나는 지성이 무섭거나 그를 우러러보지 않았지만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가 아니어서 (이런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그 중 몇 안되는 자신감 불경기 중 한 구간이 그 시기였다.) 나답지 않게 많이 참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내가 성격이 (엄청) 좋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타인들끼리의 관계에 철저히 무심하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때로는 그의 편, 때로는 반대 편에서) 싸웠다거나 이런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무심함도 나름 매력이었다.


캐주얼한 관계로 돌아왔을때 지성은 확실히 그냥 친구보다는 훨씬 가까운 존재였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많이 편해졌다. 나도 그에게 너그러웠는데 꼭 그에게만 너그러웠던 것은 아니다. 나의 별스러움을 인정하고 장점이나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들과는 대체로 잘 지낸다. 나의 별스러움을 깨닫지 못하면 차가운 인상 때문에 한없이 어려운 존재로만 느낄 것이다.


"안 웃으시면 무서워요."


정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요구사항은 내가 즐겁지 않은데 웃어달라는 것이다. 마치 자기가 내 웃음을 맡겨놓은 것처럼. 장난하나? 본인이 내 고객도 아니고, 내 사랑을 받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왜?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 자체가 호감이고 사랑이다. 모든 형식적 인사에 최선을 다하기 어렵다. 굳이 말로 인사를 안 해도 되는 상황에 적당히 목례만 하는 게 낫다. 가장 화나는 포인트는 내가 왜 '무서우면 안되냐'는 것이지만 지금은 화내고 싶은 타이밍이 아니므로 넘어가자.




사람들은 지성이 나에게만 잘해주는 것도 그의 별스러움으로 받아들였던 걸까? 나 역시 내 사람들과는 꽤 가깝게 지내는 편이라 나의 별스러움과 그의 별스러움이 상호보완하는 것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구성을 모르는 친구가 놀러오면 우정보다 가까운데 근친이라기에는 불경한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지성과 나 사이에는 스파크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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