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Nov 14. 2023

'아무 것도 아님'의 자유로움

바이즈 <더 웨이>

그리고 큰이모는 시각을 잃은 후 얻게 된 예민한 다른 감각들을 활용해 큰이모가 느끼는 풍경을 언니에게 묘사해주었다. 바람이 어제보다 부드럽고 가볍구나. 눈 때문이지 사방에서 지난여름 우리가 쪼개 먹었던 수박 향이 나는구나. 까치 소리가 평소보다 가깝게 들리는구나. "엄마가 묘사해주던 그 세계 역시 정말로 아름다웠어." -백수린, <빛이 다가올 때>




대화(dialogue)는 쌍방향이라 독백(monologue)이나 강의(lecture)와 다르다. 일방향의 말하기는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야기의 중심이 화자에게 치중되어 있고, 만약 화자가 청자를 충분히 배려하지 않거나 청자가 화자에게 적개심을 가진다면 이야기는 전달되지 않거나 왜곡되기 쉽다. 쌍방향의 말하기가 지속되려면 대화의 중심에 화자와 청자가 공존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Are we on the same page?"


다시 말해, "알겠어?"라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등장해야 한다. <더 웨이>는 일방적으로 전달했을 경우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대화의 형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노인이 전달하는 이야기를 알듯말듯 하지만 노인이 반복해서 풀이하고 묘사하는 동안 화자는 노인의 페이지에 가까워진다. 이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면 독자도 그 페이지에 가까워진다.


저자의 전작인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아>에서 언급했던, 활자를 읽고 기억하는 차원의 독서에 '에고'를 투입하여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도덕경의 핵심 내용이 이어지지만 <더 웨이>는 조금 다른 차원으로 진행된다. 몸과 마음의 관찰은 내가 거대한 우주 혹은 자연의 흐름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머물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투영되는 지식과 감정을 책이나 외장하드로 만들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아님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너무 많은 것에 감정이입을 하던 시간들이 끝나간다. 우리 모두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분류'되는 순간 그 분절 속에 갇힌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님이 우리의 본질이자 무소속의 자유가 아닐까. 우리라고 칭하는 데 별다른 이유는 없다. 이 이야기가 독백이나 일방적인 설명, 혹은 어떤 권위를 가지고 하는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런 명분조차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아무 것도 아님'의 자유로움을 함께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자유도 혼자만 누리면 외로운 법이거늘.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의식은 한 번에 한 가지 대상만을 인식한다는 점이야. -19p, 내면의 관찰


행위를 하는 '행위자인 나'라는 것이 없으니, '나의 이익'도 없고, '나의 자부심' 등등도 당연히 없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살지만 소유하지 않을 수 있는 거야. -57p, 문제의 근원


쉽게 말해서, 악하다는 것은 마음이 닫혀 있다는 거야. 선(善)은 그와 반대로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거야. -83p, 수행


재미있는 사실은 마음의 긴장이 몸의 긴장을 일으킨다는 거야. 물론 몸의 긴장은 역으로 마음의 긴장을 일으켜. -141p, 긴장과 이완


감각을 경험하는 시간은 개인차가 있고, 부딪힌 강도 차이도 있을 수 있어. 그러나 그 감각이 결국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될 거야.

-190p, 나라는 것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마음은 나의 것이라 주장할 수는 있어. 그렇지만 마음이 곧 나라고는 할 수 없는 거야. -203p, 나라는 것


먼 곳에서 온 친구를 만난 '나'도 기쁘고, '나'를 찾아온 그 '친구'도 기쁠 거야. 기쁨은 본디 공명하니까.

-219p, 수행의 성취


있는 그대로 그 순간을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

-223p, 수행의 성취




< 웨이> 마음을 치유하는 좋은 부작용이 있는 책이지만 치유를 목적으로 읽어서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책을 거듭 읽으면 읽을 때마다 호흡이 안정되고 심신이 편안해진다. 책을 가지고 있다면 부디 '마음을 열고' 다시 읽어보기를. 어떤 키워드로 설명하지 않아서  좋은 책인데, 바로 그런 이유로  역시 한줄평이 불가능한 책이다. 그저 읽기를 권한다.




https://brunch.co.kr/@swover/261


*전작 리뷰 다시보기

이전 12화 잉여짓은 나를 지키는 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