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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Dec 02. 2023

나도 뉴욕 갈래

단편소설 <24시 카페 라이언>

집을 나선지 채 일 분이 되기 전에 운동화 속에서 작은 돌이 밟혔다. 돌이라고 부를만한 크기조차 못 되지만 모래와는 확실하게 다른 존재감을 가진 그것이 밟힐 때마다 견딜 수 없었다. 정말 급한 출근길이 아니고서야 당장 구석으로 가서 신발 속을 털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런 백희를 연정은 깔끔이라고 불렀다.


돌보다 작고 모래보다 큰 그것을 털어내고 확실하게 상쾌해진 발걸음으로 카페 라이언을 향해 걸었다. 백희의 집에서 도보로 15분 이상 소요되지만 버스를 탄다고 해서 출근시간이 줄어든다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가장 오래 일했고 집이 가까운 백희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심야 근무를 맡았는데, 그가 출근하는 밤 11시 반에서 12시 사이에는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퇴근하는 아침 8시에는 길이 막혀서 안그래도 빙 돌아서 귀가하게 되는 버스가 무용지물이 된다.


백희는 밤에도 걷고 낮에도 걷는다. 걷는 것도 일에 포함된다. 걷는 시간도, 걷는데 필요한 기력도 일에 포함된다. 따로 수당을 받지는 않지만, 차로 통근하는 직원들도 차비를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백희는 출퇴근을 위해 의무적인 산책을 하기에 육체노동을 위한 몸을 준비하고 육체노동을 해소하는 마무리 운동을 할 수 있다. 자정에 출근하는 시간표로 바뀐 것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 백희는 거리두기 시절의 출근 시간인 오후 2시까지 숙면을 취해야 한다. 팬데믹 이전의 출근 시간인 오후 4시에는 다시 카페로 돌아온다. 아침 8시에 백희와 교대하는 연정이 오후 4시에 퇴근하기 때문이다.




연정은 구 경계를 넘어 전철 2개 역을 더 올라간 곳에 살고 있다. 그녀는 팬데믹 초기부터 아침 8시에 출근하게 됐고, 마스크를 쓰고 지옥철을 타야 통근 시간을 20분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버스를 타면 큰길을 피하는 대신 집에서 정류소, 정류소에서 카페까지 각 10분을 걸어야 한다. 걷는데만 20분이 걸리는데 그렇다고 출근시간의 버스가 순간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집에서 카페까지 도보로 45분, 그러나 백희를 출근시키고 자정에 45분을 걸어올만한 길은 아니다. 그 시간에는 차라리 백희의 집으로 걸어가는 편이 안전하다.


작년까지 둘은 백희의 집에서 동거했다. 연정은 5 , 백희는 그보다  년쯤  전에 카페 라이언에 채용됐다. 백희는 카페를 창업할 생각으로 파트타이머로 입사했지만 팬데믹을 맞고 창업을 무한연기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제한으로 사장은  정직원이  알바생 백희를 매니저로 승진시켰다. 대신 심야 알바를 하던 젊은 학생들을 해고했다.


연정은 대학원에 가기 전 3개월 정도만 일하면서 바리스타 업무를 배워두려고 파트타이머에 지원했다. 그때만 해도 장기근무자를 우대했기 때문에 사장에게 대학원 입학 예정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같은 알바생이던 또래의 백희와 일을 하다보니 어디가서 눈치보며 일하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급여는 거기서 거기인데, 마음맞는 동료와 함께 있으니 노동시간의 질이 월등하게 좋았다. 연정은 대학원 입학 후에도 계속 알바를 했고, 첫 학기가 종강한 후 무기한 휴학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연정도 대학원에 실망했다.




카페 라이언에서 1년 넘게 근무한 스스로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싶었기에, 연정은 여행을 가기로 했다. 사장에게 미리 말하면 단기 알바를 구하거나 사장의 조카가 그 시간을 메운다. 하지만 연정은 사장에게 연락하기 전에 백희에게 먼저 말했다.


"나 뉴욕 갈거야."

"어? 나도 갈래."


백희는 연정이 상상해보지 못한 대답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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