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우의 이탈리아 여행기
베니스의 여러 섬 중 하나는 묘지섬이다. 베니스와 무라노 사이에 위치한 이 섬을 자체가 묘지인 셈이다. 베니스에서 차 대신 배를 타고 다니는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영구차가 아닌 영구선으로 마지막 길을 떠난다. -107p, 베니스/무라노/부라노
사진 촬영에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럽을 가보지도 못했지만 평생 유럽 풍경사진을 보고 상상하고 읽는 취미를 가져온지라 이제는 사진과 사진을 디스플레이한 모양새만 봐도 그 사람 성격이 읽힌다.
게다가 나 역시 여행 인스타그램을 8년 동안 운영하고 있으니(책을 줄여도 여행은 줄이지 않으니 뼈대는 여전히 여행?) 사진에 큰 뜻이 없다고는 해도 사진에 대한 미학과 고집은 꽤나 뚜렷한 편이다. 예를 들어 여행이나 풍경을 주요 소재로 취급한다면 인스타그램 프로필 그리드 안에 반드시 하늘이 보여야 한다던지. 내 취향이기도 하지만 인스타 특성상 여백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답답하고 지루하다.
우리의 신연우 작가는 풍경과 날씨와 소도시의 소도시적 면모를 과하지 않게, 그러나 충분히 개성있게 촬영하고 배치했다. 이왕 사진이 필요한 책이니 사진이 많으면 좋은데 기존 여행기와 (굳이) 비교하자면 이 책에는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사진이 없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글은 또 어찌나 촌철살인인지. 이 책은 나를 여행에세이와 책스타그램과 블로그의 세계로 초대한 베테랑 여행블로거 권호영 작가의 소개로 (권 작가의 인스타그램 이벤트로 당첨된 책, 상단 협찬 표시 참고) 알게 된 만큼 감각은 보장돼있었지만.... 읽다가 울컥하게 될 줄은 몰랐지.
테라 로사, 테라 지알라로도 불리는 시에나는 엄버, 오커라는 컬러와 함께 인류가 사용한 첫번째 안료로 전 세계의 동굴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에나는 채굴했을 때는 노란 갈색, 가열하면 적갈색을 띠는 안료로 르네상스 시대에 이것을 생산하던 '시에나'에서 유래했다. -63p, 시에나
마스크를 쓰는 전통은 13세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장난과 환락을 즐기기 위해 시작되어 현재는 카니발의 상징이 되었다. -115p, 베니스/무라노/부라노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다보니 다른 곳에 비해 평균적으로 가격이 높긴 하지만 가끔은 이런 사치도 누려야 여행의 고단함을 지울 수 있다. -148p, 포지타노
오랜 걸음에 타는 목을 달래기 위해 물 한병을 구입했는데 서비스로 레몬 주스를 건넨다. 그 마음이 고마워 레몬 주스 한 잔을 주문했더니 시원하고 달콤한 레몬 그라니타가 서비스. 그 정이 참 좋다.
-160p, 아게롤라
이 해변은 자갈로 이루어져 있어서 유난히 맑은 물색을 자랑하지만 해변을 따라 걷고 싶다면 발을 보호해 줄 신발을 챙겨야한다. 걷다가 지치면 해변에 주저 앉아 메시나 해변을 지나는 거대한 화물선을 구경하거나, 바다 건너 등대를 보고 시칠리아 여행을 꿈꾸는 건 어떨까. -179p, 쉴라
원하는 기념품을 발견했다면 구입을 절대 미루지 말자. -198p, 알베로벨로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마주한 포르토피노, 여름철에 더운 빛나는 휴양지인 이곳을 사람들은 천국의 모퉁이라고 부른다.
-259p, 포르토피노
이탈리아 여행 계획의 스케일을 떠나 산책덕후 필독서인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 일명 <플라뇌즈>의 베네치아 파트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장면 장면이 떠오르는 묘사, 그 현장의 운치를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책이다. 체력이라는 필터로 퇴색될 여행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어느 틈에 파리 지도 옆에 붙여놓은 장화에 찍혀있는 옛 주요관광지와는 다른 곳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도시 중 피사, 베로나, 베니스를 제외하면 어디어디(주로 로마, 나폴리) 인근으로 묶이거나 언급조차 되지 않는 곳들인데 오히려 반갑다.
전형적인 콜로세움 사진(도 물론 좋은데)이 없는데도 이탈리아의 내음을 방 안에서 맡을 수 있다니. 이렇게 고마울수가! 책만 봐도 피자향 솔솔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