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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r 08. 2024

이것은 여전히 가짜 갈망이다

캐럴라인 냅 <욕구들>

정말 그게 여자들의 가장 주된 목표일까? 욕구를 없애버리고 싶은 욕구가? -41p




많이 다르지만 많이 닮기도 해서 친구보다 자매에 가까운 여자친구 유진이 연말에 빌려준 . 덕분에 창작부스터 3부작 '캐럴라인 , 엘레나 페란테, 박연준' 연초에 읽으려고 계획했으나  첫번째인 냅을 완주하는데 이틀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마지막 주자는 2월로 이월됐다.  작가와 숨은 조력자 권여선, 박상영까지  읽어도 설날 연휴가 오지 않기를. (여기까지는 연휴 전 완독 리뷰를 마쳤다!)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패션업계와 끝내 화해하지 못했고 남은 것은 빚과 패배감 뿐인(줄 알았는)데, 내가 가진 (주로 내면보다는) 몸은 동성들과의 관계를 끝없는 갈등과 반목으로 밀어냈다. 칭찬인척하는 질투, 질투인척하는 칭찬, 순수한 칭찬이라 해도 진실은 알기 어렵다. 고맙지만 불안한 마음.


<명랑한 은둔자>에서 바로 넘어오지 못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내 몸을 커지게 하는 방법을 못찾고 있어서 거식증 치유과정을 보고싶지 않았다. 격한 운동(공연)에 배분할 에너지가 고갈됐지만 산책과 요가로 (거식증이 아닌!) 식욕부진은 해결했다.


​이번 책은 아주 부드럽고도 탄력있는 벨벳을 다루듯 주의를 기울여서 읽고 내 생각을 뽑아내야 했다. 읽는 동안 토론회를 준비하는 사람마냥 끝없는 메모와 검색을 했고 매일 새로운 기획서를 썼다. <명랑한 은둔자>의 파급효과를 생각해보면(에세이를 몇 권 썼더라?) 놀랄 일도 아니다.




여자들(구체적으로 말해 아내들과 어머니들)은 뒤로 물러나 남들의 뜻을 따라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지 예상해야 하며, 자기 존재의 정의를 가족을 통해서 찾아야 하고, 그리고-어쩌면 무엇보다-자신의 (사랑, 일, 성적 표현을 위한) 추구들을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반응하는 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칙 말이다. -123p


시간이 지나면서-주가 달이 되고, 해가 되고, 10년이 되면서-현실은 잠식되고, 이상적 육체가 평범하게 보이고 평범한 육체는 볼품없고 미학적 기준에 못 미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아름다운 몸과 평범한 몸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넓어지고 뚜렷해진다. -179p


이것은 텍스트인 몸의 완벽한 예다. 글자 그대로 피부에 새긴 절망이며, 메스로 새긴 불만이다. -198p


여자들이 품고 사는 자기혐오의 강도는 언제나 내게 깊은 충격을 안긴다. -230p


​심지어 나는 식사장애가 있는 (다른) 여자들에 관한 글도 썼다. -244p


우리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기본적으로 의학적 사건이라고 배웠다. -249p


마음은 몸에서 달아나기 시작하고, 몸 자체는 깊은 침묵과 수수께끼에 싸여 은폐된다. -255p


행동주의도 잊어라. 그 시기에 사회 변혁을 향한 추진력은 자기 계발 워크숍과 실용서의 부연 안개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고, 장기적인 사회적 관점은 미봉책을 찾는 내면 아이의 충동에 밀려났다. -272p


돈으로 산 정체성, 그렇게 확보한 소속감. -278p


​사건은 종결되고, 투쟁은 끝났으며, 여자의 세 가지 갈망-야망, 가족 관계, 성적 표현-은 사회변혁이라는 고된 일이 아니라 향수와 말쑥한 정장, 가죽 액세서리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286p


​더 좋은 방법은 나가서 자신을 위해 예쁜 뭔가를 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여전히 가짜 갈망이다.

-295p


​그건 바로 그 허함, 바로 그 절망과 실망의 강도, 바로 그 눈물, 항상 가까스로 흘리지 않고 버텨냈고 부인했고 굶음으로써 쫒아버렸던 그 눈물, 한마디로 슬픔이었다. -318p


​현대사에서 가장 소비 지향적인 사회가 기이하게도 가장 열렬히 내면을 탐색하는 사회가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351p


우리가 원하는 것, '중요함'이라고 표시된 선반에 들어 있는 것은 물론 연결이고 사랑이다. -357p




밑줄 인덱스(롱 플래그)를 잔뜩 품고 반납 불가 상태가 돼버린 책을 지나 에세이 욕구를 장전했고, 읽는 만큼 쓰기도 했던 겨울이었다. 특히 캐럴라인 냅으로 요약되는 '욕망이 있지만 속으로 삭이는' 여성들에게 비어져 나오는 뒤틀린 단서들을 마냥 받아줄 수 없는, 내 욕구에 좀더 집중해본다.


나는 더 많이 품을 수 있지만 기어코 밀어내는 것은 내가 아니었으므로. 그럼에도 유진이, 나와 세계를 연결했다. (내 친구지만 참 훌륭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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