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믿음에 대하여>
우리의 시작이 한 남자의 거짓된 삶과, 그 삶보다 더욱 거짓 같은 죽음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관계란 참 농담 같은 것이기도 했다. -222p
나는 교주나 신격화 된 성상 혹은 그 모델이 된 성인 역시 인플루언서나 스타작가와 같이 일종의 셀럽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지극히 성스러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돌(idol, 우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축복이나 저주를 신봉하지 않아도 가끔 '신이 내린' 재능(축복인가?)을 인정해야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라고 생각한다.
글레넌 도일은 레즈비언으로 커밍하웃을 하고도 하느님과 화해를 했다. 특히 현지화를 기가 막히게 해버리는 개신교의 특성상 하이브리드 개신교와 하이브리드 유교의 교집합에 있는 코리안 크리스천과 퀴어는 특히 방해하기 힘든 (모녀보다 끈덕진) 모자관계 마저도 불신지옥으로 보내버린다. 신앙은 그 자체로 인간을 구원할지도 모르겠지만(나는 불가지론자이므로) 신앙을 빌미로 인간을 차별하라는 말을 적어도 예수나 부처가 한 적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듯 셀럽이 되면, 자기가 하지 않은 말까지 책임(?)져야 한다.
우리의 박상영 작가는 '신이 내린' 메타인지와 허를 찌르는 유머감각, 고립과 마녀사냥과 본인이 셀럽이 되어버리는 그 환란 속에서 어마무시한 작품을 출생시켰는데....
이미 어느 정도 인증(?)했지만 나는 '상영교'의 (느슨한) 신도이기도 하고, 그의 영향권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교주(?)의 신격화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상영교 신도들을 익히 알고 있겠지.
그 '믿음'이 주제는 아니다. 저자에게 새삼 다시 배우는 사회생활(또는 그의 취재력)과 그로 인해 깊이 새겨진 각자의 상처를 달래고 보듬는 과정에서 대리만족만 느끼고 말기에는 여전히 미안하고 아프다.
요즘 것들이 되지 않으려는 분투를 무시하고 난도질하는 '그들'에게도 물론 사연이 있는데, 이를 인정하자니 그 존재가 너무 거슬리고 막상 인정한 후에는 적나라하게 묘사하기 꺼려지는(?) '여성'이라는 신기루 같은 카테고리에 정체성을 두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들. 물론 저자가 여성 독자를 위해 설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있었다 한들, 그게 포인트는 아니다.) 한 명의 여성 독자 혹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의 후배로써 박상영을 통해 다방면의 경계를 확장해가는 법을 배운다.
이런 우리의 변화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라 믿었다. 그렇게 나다운 것들을 깨끗이 표백하고 나면 비로소 매거진 C의 색깔이 입혀져 그토록 염원하던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38p, 요즘 애들
선배 있잖아요. 저는 칭찬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인간 취급을 받고 싶었어요. 실력도 없는 주제에 이름이나 알리고 싶어하는 요즘 애들이 아니라 방사능을 맞고 조증에 걸린 애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요.
-49p, 요즘 애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남들은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민감한 사항을 기어이 들춰내고야 만다는 점. 거스러미처럼 올라와 있던 아주 작은 갈등 요소를 포함해 기꺼이 뜯어내고, 갈라진 상처 틈을 파고들어 결국에는 타인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당긴다는 점. -120p, 우리가 되는 순간
욕보다 더 진득한 무엇이 담긴 말. 은채는 스스로도 놀랐는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견딜 수 없이 분노에 찬 상황에서도 별것도 아닌 말에 입을 막아버린 은채. -142p, 우리가 되는 순간
그냥 열심히 살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돼버렸지. 나쁜 일은 하기 싫은데. 어떤 선택을 해도 더 나빠질 일만 남았네. -160p, 우리가 되는 순간
다만 그날 나는 결심했다. 미래 같은 것은 함부로 기약하지 않기로. 이제 더이상, 그 어떤 믿음도 갖지 않기로. -189p, 믿음에 대하여
글쎄, 돈 갚는 재미? 그 집, 벽이며 바닥이며 죄다 돌이라 집이 아니라 관 같더라. -212p, 믿음에 대하여
팬데믹과 부동산 스릴러(?)가 가미되어 로맨스릴러적 요소가 재미를 돕는 이번 작품은 끝날 때(혹은 그 후)까지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끝까지' 읽기를. 작가의 말도 반드시 '끝까지' 읽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