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 <바비의 분위기>
내가 박민정의 소설을 깊이 사랑하는 까닭은 그의 소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각할 것을 요청하면서도, 동시에 판단 중지를 불러일으키는 압도적 순간을 그려낸다는 데 있다. 이 모순에 나는 항상 놀라고, 자주 질투를 느낀다. -추천의 말(황인찬)
메트로폴리스와 소도시, 서울 내부에서 각각의 지명이 상징하는 것, 한국과 여러 겹의 관계를 (다소 눈에 띄지 않게) 맺고 있는 외국에 대한 지정학적 현실과 있을 법한 픽션이 촘촘하게 새겨진 장인의 수공예품(같은 책)을 만났다. 거듭되는 반전에 많이 놀랐고, 때로는 갸우뚱하다가 하세월이 지날 것 같아 의문을 삼키고 페이지를 넘겼다. 리뷰를 위해 다시 읽고 또 읽어도 갸우뚱하다 덮었으며, 감히 질투를 느낀다.
만 십이 세, 혹은 구 세, 혹은 그 이전부터 쇼핑은 시장조사였고, 산과 산 사이를 오가는 하교길에 또 다른 산(응?)을 굳이 오르는 아이다운 방황은 이미 산책이었다. 부모님의 첫 자가가 생긴 후, 장거리 통학이 시작되어 심지어 기숙사에 사는 동안에도 도보로 통학하지 못했으며 정류소와 정류소 사이를 발로 그려온 지도에 나도 모르게 많은 것을 축적했다.
주희처럼 코덕이었던 십대와 이십대를 보냈고 주희보다 많은 것을 가져봤지만 잃기도 했으며 경기도에서 유아원과 고등학교을 (잠깐) 다녔기 때문에 '서울(깍쟁이)' 같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지금까지 서울시 소속 9개 이상의 구에서 (대부분 혼자) 살아봤다. 서울의 지역별 냄새와 미드에 등장하는 다양한 아시아인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이 취미 이상의 행위임에도 (그렇게 여행자, 멘탈 이민자 혹은 산책덕후라는 페르소나를 창조했음에도)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동안 몰랐던 모르는 것이 더 나타날까봐 지레 겁나서 손대지 못하는 분야들이 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고 거듭 쿨하게 인정하면서 나를 소외하지 않고 당신과 나의 무지를 일깨우는 박민정의 화자들은 설명하거나 훈계하지 않고도 나 자신과 이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냉소적이든 달콤살벌하든 위트를 기본으로 장착한 작가들처럼 당근맛 채찍은 아니다. 그러나 결코 재미없거나 고통스럽다고도 할 수 없는 채찍맛 채찍은 학구열이나 산책욕구 그 이상을 충족시킨다. 그보다도 충족해야 할 욕구의 스케일을 넓힌다.
상담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섬세하게 추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36p, 모르그 디오라마
주희는 세실의 작문을 보며,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신경 쓰지 않고 문장을 대충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국어 사용자로서 자신이 가진 권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60p, 세실, 주희
오빠, 정신차려. 그녀는 오빠에게 보란 듯이 살고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고.
-108p, 바비의 분위기
이런 걸 아예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서울에 오랫동안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쓸데없는 정보들이었다.
-138p, 신세이다이 가옥
그런 생각조차 죄가 되는 것 같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있었다. -193p, 천사의 비밀
그것은 그것이구나. 그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말이로구나. -229p, 천국과 지옥은 사실이야
'진지하게 묻고 있다'라는 표현은 장식적 수사가 아니었다. 박민정의 소설은 실제로 다른 누구의 소설보다 도드라지게 진지하다. 이 진지함은 지성의 소산이다. -255p, 해설_괴물과 사실, 그리고 앎의 장치로서의 소설(송종원)
고통에 관한 서사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중독돼있고, 고통을 선사하는 진실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앞선다. 그럼에도 논픽션을 포함하여 '보다 자세히 알기'를 기꺼이 선택하는 어떤 욕구가 있다.
진실의 욕구 혹은 내 고통의 참된 근원을 찾아가려는 욕구 혹은 무지로 인한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은 욕구. 무지성 언어에, 특히 혐오적 언어에 강한 결벽증적 혐오가 있는 나 같은 사람(은 가족들과 많이 싸운다.)조차 방심하면 그런 비슷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척박한 우리의 식탁에서 어떤 말을 삼켜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