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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r 17. 2024

블링크

단편소설 <나머지정리>

​어떤 작품의 미적 완성도를 판단하는 근거는 주로 색감과 비례, 일관성, 그리고 순간적으로 드는 감정이다. 이것을 블링크*라고 해야 할까. 진품을 감정하는 전문가들은 촉으로 가품을 알아챈다고 한다. 실수로 다른 화가의 폴더에 넣어 둔 작품들을 보고 묘하게 이질감을 느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그런 촉은 병아리 감별사를 예로 들었던 희대의 예술 사기꾼 닐 카프리**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색감은 ​블링크의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고, 색채는 빛의 일종인 가시광선의 반사와 흡수에 의한 과학이다. 편의상 평면작품에 한정하더라도 색채 안에서만 비례와 일관성, 그리고 블링크가 필요하다. 다시 닐 카프리를 소환하자면 그는 모작의 미묘한 색감 차이를 보고 범인이 복제 행위를 한 시간대를 맞추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이 어떤 예술가는 비례를 상징하고, 달인 중에서도 달인으로 인정받는다. 작품 내부의 일관성은 완성도, 작품들 간의 일관성은 시그니처로 해당 작가를 설명한다. 그러나 어그러진 일관성, 칼비례가 아닌 스타벅스 세이렌,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눈물로 바뀐다는 마크 로스코처럼 아름다움이란 그렇게 똑 떨어진 매커니즘이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논쟁을 하고 있겠지만 예술과 철학의 접목은 어쩐지 과학기술에 대처하는 인본주의적 해결책인 듯 하여 마구 환영할 수 있는 현상도 아니다. 전문가용 카메라보다 구현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인간의 붓터치가 덜 아름답나? 그림같은 사진과 사진같은 그림이라는 상호보완적 칭찬으로는 어쩐지 모욕적인가?


여전히 시즌마다 강력한 버전으로 돌아올 예정인 인공지능 아바타는 어떠한가. 사진보다 더 나와 닮았는데, 거추장스러운 변장 과정도 필요없는 즉석 초상화 서비스는 19세기 셀럽들이 존 싱어 사전트에게 지불했을 비용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저렴하다. 그마저도 시간을 투자하면 0에 수렴한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에게 나의 초상적 정보를 넘기는 찜찜함을 애써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주 감사한 세상이다.




연수의 작품, 특히 그의 제작과정은 블링크나 촉이 없다면 끝내 알아채기 어려운 것들로 가득하다. 그를 인정해줄만큼 재능이 있는 후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에 당분간은 그가 훨씬 전에 받았어야 할 대우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해본다. 하지만 그에게는 예술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주로 지나친 인정욕구와 그에 따른 자기애, 자기중심적 태도 비슷한 무언가. 더 젊었을 때 인정을 제대로 못받았기 때문이다.


표고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기존 세계에서 가져본 적 없는 완성도를 인정받으려고 자기를 학대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썼다. 이제 그녀는 블링크가 보다 인정받는 세계를 스스로 구축하고 있다. 타인의 인정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표고가 원하는 타인은 '불특정 다수'도 아니고, '특정인'도 아니다. 특정 소수 이왕이면 특정 다수, 표고 자신이 인정한 상대방에게 적당한 탄력으로 돌려받는 인정을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 여자와 어울리는 연수가 여전히 못마땅하다. 그에게는 내공이 있는 여자를 만날 수 있는 포텐이 있는데 성급한 자기애의 이면인 자기혐오가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 같다.


표고도 별반 다르지 않다. 표고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이성애적 접근을 훨씬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통제력을 업그레이드해서 그나마 봐줄만 한 편이다. 조숙한 분위기와 달리 경험이 적었던 청년기의 표고는 자기 마음을 따라가지도 못했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그 이상을 원하는 사람을 거절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그게 꼭 착한여자 컴플렉스는 아니다. 아닌가? 모든 사람은 얼굴값과 꼴값의 딜레마를 겪어야 한다. 들고 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그 평판이 달라질 뿐.


어쩌면 연수의 인기(?) 비결은 얼굴값을 안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표고는 얼굴값을 하려면 일단 얼굴값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갑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는 연수의 얼굴을 보면 더더욱 그 필요를 느낀다. 연수나 표고는 다시 태어나도 얼굴값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꼴값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



(계속)


*말콤 글레드웰, <블링크> 도입부에서 정의한 개념

**미국드라마 <화이트 칼라>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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