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시카고, 워싱턴에 있는 사전트의 그림들
오늘은 미술사를 독학하는 날인데, 나의 아저씨(중 한 명인), 존 싱어 사전트의 또 다른 문제작을 탐구하려다 일이 커졌다. 가장 유명한 문제작은 <마담X>이며, 이번 문제작은 <Nonchaloir>이다.
지난 시즌에 소개했던 작품 <Nonchaloir>의 제목은 알 것 같지만 수상한 단어라 검색을 해보니 프랑스어 고어였다. 언어 덕후는 여기서 미술사를 팽개치고 프랑스어로 달려갔다.
농섈루아는 무기력, 태만, 무사태평 등을 의미하는 남성형 명사인데 지금은 농섈라스라는 여성형 명사를 쓰는 것 같다. (프랑스어 하수도 아닌 왕초보임 주의) 그런데 이 여성형 명사는 그대로 영어에 수입된 단어이다. 그러니 이 그림의 제목을 보고 어리둥절 할 수 밖에.
현대어 nonchalance와 대체 가능한 유의어들 중에서 대표적인 단어들은 영어와 프랑스 양쪽 사전에 있다. 관련 전공이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를 접했다면 알 수 있는 단어들인 indifference, detach(e)ment, negligence, indolence 등은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증가하며, GRE 레벨을 넘어서는 insouciance는 (G어휘를 여러번 훑어본) 나도 처음 본다.
고급 레벨의 단어들은 영어로는 당연하게도 고급이지만 애초에 프랑스산 단어이니 프랑스어로는 고급이 아닐수도 있다. 철자가 똑같지 않아도 같은 어원임이 눈에 보이는 유의어의 쌍으로
apathie(F)/apathy(E),
langueur(F)/languor(E),
desinteret(F)/disinterest(E)
등이 있다.
특히 영어에서 볼 수 없는 넘사벽 단어들이 재미있는데, mollesse는 영어에서 추상명사가 아닌, 구체적인 material(재료)명으로 쓰는 molasse(당밀)의 철자와 유사하지만 기력없음, 나약함이라는 의미. 영어의 relaxation과 같은 어원일 relachement는 해이, 태만, 이완이라고 한다.
농섈라스 관련단어 중 laisser-aller(리씨알리)는 정말 생소한데 '되는대로 하기'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단어도 이미 영어사전에 있다! 영어로는 레이저-알러라고 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0.1% 정도 있으려나. 이 단어를 알 정도면 프랑스어(를 빨리 더 배워서) 위주로 말하는 게 서로 좋을 것 같다. 영국 귀족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열심히 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일세.
농섈라스는 이쯤하고, 문제의 그림 <농섈루아>는 인스타그램에 기록중인 예술여행 시리즈 중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사전트 1부>와 미국드라마 <화이트칼라>에 등장하는, 누워있(다기 보다도 한껏 늘어져있)는 여인의 초상이다. 사전트 시대보다 훨씬 전부터 비슷한 포즈의 나른한 여인을 그린 화가들이 많고 그 중에는 르누아르도 있다.
사전트의 모델은 옷을 벗지 않아도 전라의 여성들보다 매력적이다. 그를 '패션일러스트레이터'의 선구자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이 부분은 패션의 역사를 더 공부해서 보충할 예정이다. '그만두지 않기' 프로젝트에 의해 패션관련 공부와 창작활동 중에서 적어도 일러스트는 그만두지 않아야지, 라고 결심은 하고 있다.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사전트 2부>에서 포스팅한 사전트의 풍경화는 '실크 드레스 그리기의 장인'이라는 그의 시그니처를 배반했다.
그로데스크한 <베니스의 거리>도 있고, <낚시 가는 길>이라는 바다 풍경화는 거의 윈슬로 호머에 가까운 소박한 평화로움을 보여주며 (모네처럼 화려하지 않음) 숲을 배경으로 하는 풍경화는 유기농 생채소처럼 거칠다.
그래서 나는 사전트가 초상화로 돈을 벌어서 자기 취향인 풍경화를 그렸을 거라 추측했는데, 그 추측이 맞긴 했지만 생계형 화가는 르누아르였다. 사전트는 원래도 금수저였는데 초상화를 그려서 더 많이 벌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사전트의 일생이 포함된 참고자료를 통해 좀더 알아볼 예정이다. 그리고 그는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파리와 런던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미국은 그를 자랑스러워하지만 그의 화풍은 유럽적일수 밖에 없다.)
사전트의 최대 매력은 실크 드레스가 아니었다! 그는 노동계급의 삶의 현장에서도 같은 정성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쪽이 더욱 그의 취향이었다는 느낌이 온다.
그의 문제작 중에서도 가장 문제작인 <마담X>도 있지만 삶의 현장을 표현한 <Tyrolese Interior>도 있고 명찰을 활영하지 못해 심증만 있는 (이미지 검색으로 유사한 그림은 찾았으나 제목을 찾지 못한) 수채화도 있다. 사전트의 수채화로 검색하면 더 많은 그림을 볼 수 있다. (구글 영어 검색 추천)
마찬가지로 실물 크기의 초상화도 있지만, 실크가 돋보이지 않는 소박한 그림들도 있다. 지금은 이 그림들에 더 끌리는 중이다. 폭포 앞에서 야외 페인팅을 하는 장면을 그렸다니. 그림 속 콧수염 아저씨처럼 제3자가 보기에는 두 화가가 러시아 인형(마트료시카)처럼 그리는 걸 그리는 장면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