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그러나 문학에서마저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문단에 부상했던 아니 에르노는 이 세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의 속내를 대변했다. 가난이야 동정과 연대감을 기대할 수 있지만 한 개인이 겪는 차마 고백할 수 없는 이별과 외로움은 그야말로 무익한 수난이다.
-84p, 해설_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이재룡)
나 그래서 ‘우럭 한점 우주의 맛’쓰면서 그 책을 진짜 많이 봤어. <단순한 열정> -행복에 대하여
(박상영+강화길), Axt 46호(2023, 01/02)
그가 나의 가장 뜨거운 조각들을 가져가버렸다는 사실을, 그로 말미암아 내 어떤 부분이 통째로 바뀌어버렸다는 것을 후에야,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둘도 없는 사이 Les Inseparables> 영어판 서문에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1908년생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 1909년생인 자신의 어머니가 동세대임을 언급한 적이 있다. 생존작가 중 투탑이라고도 할 수 있는 1940년(9월 1일)생 아니 에르노와 1939년생 마거릿 애트우드 역시 동세대이며, 에르노의 어머니 블랑슈는 1906년생이다.
애트우드가 ‘같은 시간 다른 장소’라고 인식한 두 여성의 온도차와 에르노가 ‘같은 장소 다른 계급’이라고 인식했을 두 여성의 온도차를 생각해보면 먹먹해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 역시 그녀들보다 조금 먼저 태어난 내 할머니, 반 세대쯤 늦게 태어난 내 어머니를 종종 같은 시대에 놓고 떠올리곤 한다.
아니 에르노를 (책으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나만의 레퍼런스가 거의 없어서 에르노 사회학을 베이스로 다른 텍스트를 읽었다. 블로그에 작성한 <얼어붙은 여자> 리뷰(2021)의 전문은 ‘서평 못 쓰는 병’의 원인이 될 정도로 장문이었고 최근 4년간 (열정적으로) 작성한 서평 중에서도 손에 꼽는 대표작이다. 이후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에서 파생된 <아비투스> 등으로 연결되는, 끝나지 않을 읽은+읽을 책 목록을 가지게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2022)엔 아니 에르노 전용 평대를 너무 늦게 찾아서 중앙 베셀존의 <단순한 열정> 앞에서 15분 정도 어슬렁거리다 도로 내려놓고 왔다. 에르노 수상 다음해인 2023년에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프랑스어판 <세월>을 구입했고,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박상영 작가를 (실물로) 처음 만났는데, 장바구니에 있던 <대도시의 사랑법>을 강연 전날 급하게 구입하긴 했으나 바로 읽기에 실패한 뒤 시간을 들였다. <대도시의 사랑법> 리뷰에 나의 가장 뜨거운 조각 중 몇개를 넣어두고 해가 넘어온 직후(2024) <믿음에 대하여>를 읽었다.
그무렵 갑자기(?) 시야가 또렷해지면서 수백명의 안 읽어본 작가들이 눈에 띄었다. 첫 해의 아쉬움을 보상하기로 한 2024년 도서전에서 강화길의 박상영 인터뷰가 실린 악스트 과월호를 구입했고 마침내 그 책의 비밀이 이 책이었음을 알게 됐다. 어느 여름날 <단순한 열정>을 읽고 다시 한 달이 지나 리뷰를 위해 악스트를 펼쳤다. 갑자기 목차를 보다 아니 에르노의 <카사노바 호텔>에 대한 이야기도 발견했으나 잠시 보류하겠다. 다음에 읽을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탐닉> 또는 <자리>가 될 것 같다.
<단순한 열정>에 수록된 해설과 연보를 통해 아니 에르노 작품 세계에 다시 흥미를 가진다. 입문작을 읽고 다음 작품을 고르지 못한 상태로 시간이 흘러 첫인상이 까마득해졌으나 <얼어붙은 여자>에 몰입했던 감각과 <대도시의 사랑법>에 몰입했던 감각은 닮아있었다. 앞서 읽었던 책들, 재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 갔다. -17p
나는 결국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사람에게 다른 여자, 아니 여러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그의 곁에 있는 여자가 한 명일 경우 내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하기로 했다. -39p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66p
감각을 확장시켜주는 사랑이 있고, 그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단순한 열정>은 열정적이지만 단순하다. 한 사람을 향한 마음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던 시절을 소환한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