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스톤> 26화
(전편에서 이어짐)
르네는 미나를 통해 주어진 임무가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란 걸 알아차릴만큼 뛰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르네는 크리올 영매 집안의 후계자로써 다른 영매를 알아보는 안목과 그들을 시기할 정도의 욕망은 있었다. 언제나 문제는 목표와 현실의 불일치였다. 미나가 가진 것 중에 미나가 없을 때 접근할 수 있는 건 다 찔러봤다. 그렇게 폴을 낳고 조르주까지 미국으로 데려갔다.
정작 르네가 원하던 것은 미나가 없는 곳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었다. 르네는 유럽보다 미국에서 강했지만 조르주는 미국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어느 정도 화해하려면 지중해를 끝없이 배회하거나 그냥 파리로 돌아가야 했다. 르네도 미나에게 위기의식에 가까운 자극을 받는 것이 차악이라고 여기며 폴을 데리고 미나의 서점에, 마르그리트의 저택에 방문했다.
미나는 르네에게 줄리앙을 조심하라고 한 것을 후회했다. 줄리앙의 미움을 사지 말라는 것이었지 줄리앙을 피하라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르네가 줄리앙 근처에 있었다 해도 줄리앙이 위험해지는 걸 막을 방도는 없었다. 악령은 르네를 포기하고 새로운 영매에게 붙었기에 줄리앙을 공격할 수 있었다. 아마도 결정적 순간에 르네와 줄리앙이 스쳤겠지.
기회를 아슬아슬하게 놓쳐서 줄리앙을 기어이 제거하려 한걸까? 혹은 현재의 영매가 줄리앙을 제압하기 적당하니 줄리앙와 르네를 떼어놓고 르네에게 돌아갈 생각인 걸까? 악령의 의도를 읽는 건 어쨌든 사람인 미나의 상상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라서보단 사이코패스가 아니라서 그렇게 이기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르네는 미나와 조르주, 아마 지금쯤은 베키와 폴에게조차 소외감을 느끼고 있겠지만 미나의 친구로써 베키나 줄리앙이 다치는 걸 원치 않았다. 미나도 르네에게 섭섭함보다는 (비록 파리의 조력자들이 르네를 곱게 보지 않는다 해도) 의지하는 마음이 크다. 일상의 사소한 선택부터 일생일대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사람처럼 생각할 수 없는 걸 이해하는 친구. 유럽 사람들이 너무 모든 걸 그러려니 해버려서 조금은 섭섭할때 오히려 찾게 되는.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자 앞서가다 사라진 조르주가 다시 나타났다. 폴은 걸음을 늦추고 베키의 손을 당기면서 베키의 안색을 살폈다.
“여기 있어.”
조르주가 차를 가져올 모양이다. 그의 등이 멀어짐과 동시에 베키는 폴의 목에 매달렸다. 폴은 베키를 안아주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두려움과 흥분, 해방감과 스릴이 얽혀 읽어내기 힘들어진 그 얼굴. 베키는 폴의 얼굴을 보고 살짝 안도했지만 동시에 갑자기 새로운 설렘을 느꼈다. 너무 가깝다는 생각과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쉴새없이 다투고 있었다. 그래봐야 이러고 있을 시간은 1분 정도였다. 뭔가를 시작하기엔 짧고도 짧은 시간이다.
“선생님 집에 가면 좀 쉬어야겠어.”
베키는 이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폴은 베키의 무게가 자신에게 실리는 느낌이 좋았다. 베키가 하루아침에 폭풍성장을 하지만 않는다면 업고 다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폭풍성장을 해서 키도 한뼘이나 커버렸지만 아직 몸무게만 그대로인 건 베키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
조르주의 차가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폴은 베키의 볼에 짧게 키스한 뒤 포옹을 풀고 다시 손을 잡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