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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pr 28. 2023

잠 못드는 밤에는 엘레나 페란테

엘레나 페란테, <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제 1권


비열한 거리에서 인형놀이를 하던 두 소녀. 기묘한 포털을 상징하는 지하창고를 거쳐 '괴물'로 여겨지는 돈 아킬레와 마주하는 과정에서 단짝으로 거듭난다. 가난한 동네의 천재 소녀 릴라와 그녀를 사랑하지만 만년 2등의 고통을 남몰래 간직해야 했던 레누는 조숙한 소녀들의 미묘한 심리, 의식의 흐름을 다듬어진 언어로 재구성한다. 도입부에서 이제는 60대가 된 화자, 레누가 다시 여섯 살로 돌아가서 들려주는 어린시절 이야기.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각 400페이지 이상이고, 가장 두꺼운 제 2권을 약 100페이지 정도 남겨 놓은 채 나머지 부분을 (셀프 생일선물로 내가 스스로 주문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년 연말부터 취향을 저격한 중고서점에서 제 1권인 이 책과 두어번 밀당을 했다.


이건 계속 읽어야 해!


책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달리다가 제 2권을 사러 갔다. 말로만 듣던 나폴리 4부작의 실물을 눈 앞에 가져다 준 그 책방에 다시 가서 산책과 검색을 거듭하여 제 2권까지 찾아냈다. 그러나 제 3권은 옆 건물 새책방에도 재고가 없었다. 막상 주문을 하자니 그동안 벼르고 있던, 재고 없는 벽돌과 고전들이 쌓여 있었다. 한번에 결제하려고 충동구매한 다른 책을 읽으면서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




사랑하는 피자의 도시에는 마피아도 살고 수공예 장인도 산다. 레몬트리 사이로 보이는 바닷가 마을이라고 상상하던 유토피아인 줄 알았던 이상화된 꿈의 도시의 사실주의적 이야기에 완전히 빠졌다.


세계문학전집에서 먼저 읽어 볼-많이 들어 본, 궁금한 책을 추려보니 영어 다음은 예상대로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독/스/프였고 페이지 수로는 러시아어 문학도 이에 지지 않았다. 한동안 번역서를 의도적으로 멀리하며 그러는 동안 영어 독서가로 여러번 탈피했다. 림보 탈출 후, 다시 번역서와 한국 작가를 책장에 들이기로 하면서 주력했던 책은 프랑스어-한국어 번역서. 이탈리아어는 계획에 없었다. 그럼에도 스페인어가 레벨업을 (언젠가는) 하게 되면, 이탈리아 문학의 스페인어 번역본이라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스페인어권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이 책으로 폭증한 이탈리아 문학에 새로운 열정이 폭발하는 중이다. 현지에서 두 언어는 호환이 가능하다던데. 실수로 애플북스에 다운받은 프랑스어판 <제인 에어>를 읽어보니 스페인어를 술술 읽을 정도면 이탈리아어도 읽긴 읽을 것 같다.  


이탈로 칼비노라면 몰라도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인생책이 될 것 같다. 어쩜 인생책이 항상 벽돌에 시리즈냐며. 우리의 '릴라'는 그녀로 인해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다른 인생책, '밀레니엄 3부작'의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묘하게 겹쳐보인다. 현생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과몰입이 되는 픽션 속의 캐릭터.


이런 작품의 영상화 버전을 보면 조금은 실망하겠지만(헤르미온느는 과몰입하기 전에 영화를 먼저 봐서 다행이야 :) 나폴리 4부작을 다 읽고 나면 그 여운이 가실때까지 드라마 버전을 보거나 저자의 다른 시리즈를 계속 읽겠지.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 다른 루틴을 적당히 비껴서, 즐거운 읽기를 계속하게 될 시간들이 기대된다.      




우리는 바위와 건물, 들판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밝은 빛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그 빛 사이에 어두운 구석과 폭발 직전의 억눌린 감정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태양빛 아래에서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모든 것을 지하창고의 어둠 탓으로 돌렸다.  -31p


나는 비가 와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는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그 거리감은 모든 걱정과 인간관계에서 나를 자유롭게 했다.  -99p




사물, 사람들, 건물, 거리가 참아내기 힘든 무엇인가를 내포하고 있어서 그것을 받아들이려면 게임을 하듯이 모든 것을 다시 만들어내야만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인데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와 그녀, 나와 릴라뿐이었다.  -137p


"시도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어."

여기서 변화란 단 한 가지, 부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나는 <작은 아씨들>의 저자처럼 소설을 쓰려고 했던 릴라를 떠올렸다. 나는 그 계획에 아직도 미련이 있었다. 그녀는 <작은 아씨들>에 대한 계획을 완전히 재정비했다.

"이제는 부자가 되려면 사업을 해야만 해." -150p




나는 공산당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으로 되뇌어봤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였는데 선생님 때문에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공산당, 공산당, 공산당이라. 공산당이자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조합은 나를 사로잡았다.  -159p


마르첼로와 두 번 연속 춤춘 것을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하긴 릴라라면 그럴 수 있다.  -197p


열네 살이 되는 그해까지 살아온 우리 삶의 수많은 조각이 짜 맞춰지며 드디어 어떠한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눈앞에 나타나기는 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254p




나는 글씨에 실린 릴라의 목소리에 흔들렸고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할 때보다 더 강하게 빨려들었다. 글에서는 구어체에 남아 있을 법한 쓸데없는 잔가지와 혼란스러움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레코나 체룰로 같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제우스 신의 머리에서 태어난 사람쯤 되어야 사용할 수 있을 법한 논리 전개였다.  -299p


 릴라가 그토록 뛰어나다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 했다. 동시에 그 기쁨은 나를 불행하게 했고 나는 이런 감정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꼈다.  -306p



                    >> 제 2권의 리뷰가 곧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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