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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pr 17. 2023

이해받지 못한, 마음으로 읽는 예술의 가능성들

올리비아 랭, <에브리바디>

우리는 그저 배고프고 유한한 개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유형이며, 우리가 살게 된 몸의 종류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기대와 요구와 금지와 처벌의 대상이 되는 존재다. 자유는 우리가 갖게 된 몸이라는 범주에 허용되는 영역 개념이 끊임없이 강화됨에 의해 파괴되는 일 없이, 혹은 방해받거나, 발이 묶이거나 파손되는 일 없이 살아갈 방식을 찾는 문제이기도 하다.
-224p, 찬란한 그물


실패한 20세기 투쟁과 혁명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구구절절 어렵긴 해도 지루하지는 않은 올리비아 랭의 신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 2010년대의 뉴욕 여행에 관한 거의 마지막 기록(브런치북, <무한대 미국일주 산책편>을 하면서 랭의 <외로운 도시>를 읽었다. 그 사이 <에브리바디> 한국어판이 출간되었고, 10.29 참사가 발생했다. 그녀의 언어로 되살아나는 외로운 영혼들을 놓아줄 수 없어서 한동안 <외로운 도시>를 붙들고 있었고, 그렇게 떠오르는 생각들은 의도치 않게 아직 들여놓지 않은 <에브리바디>와 연결되었다.



그러나 스트레스와 다른 스트레스가 있다. 과로로 수척해지고 닳아 없어지는 힘듦에 대비되는, 잘못된 삶을 살아감으로써 탈진하고 정신적으로 해지게 되는 힘듦이 있다.
-65p, 아픈 몸
그것은 몸에 굴욕을 가하는 시스템이었고, 그로 인해 몸이 몸으로부터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270p, 감방

예술과 광기와 가장자리


정신분석학이 어떤 정신상태를 과연 무슨 권한으로 명명하는지, 의학이나 철학은 과연 누구의 관점으로 성립되었는지 묻고 싶었다. <에브리바디>는 결국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자기만의 사상을 추구하는 것조차 실패해버린 빌헬름 라이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히를 알아버린 수많은 예술가들에 관한 추적이자 올리비아 랭 자신이 정신적으로 접선한 그들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군중과 투쟁, 흐름에 관한 역사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백년의 고독> 처럼,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씁쓸함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권력이 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기에 우리에게 남은 가장 확실한 희망이다.



오바마가 이 시스템을 바꾸었는데, 트럼프는 되돌렸다. 보편적 의료보험이 시행되지 않는 한 생존은 각 개인의 삶의 의지가 아니라 지불 능력에 달려 있다. -85p, 아픈 몸
성 혁명을 이야기할 때 그는 끝없는 오르가슴이라는 판타지보다는 여성이 보복이나 폭력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성적 쾌감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지향했다.
-176p, 위험으로부터

연결되고자 했던, 욕망


'공기중에 떠도는 전기'에 감전되듯이 청중과 공명하는 음악가 니나 시몬은 미국 드라마 <설국열차>의 종합예술가 오드리처럼 생각만해도 정신적 오아시스로 초대받는 기분을 선사한다.



자신이 원했던 범주를 거부당하자 그녀는 범주라는 것 전체를 거부했고, 노래 한 곡 안에서도 수시로 블루스에서 재즈로, 가스펠에서 소울 음악으로 돌아다녔으며, 피아노 반주는 항상 바흐에 다시 닿을 길을 갈망하고 있었다. -357p, 22세기
나는 찬란하고 단속받지 않는 히르슈펠트의
4300만 가지 성별, 뛰어들어 헤엄쳐나갈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원했다. -347p, 22세기


스스로의 존재와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이 예술가의 운명인 것처럼 보이지만, 흑인 또는 여성 또는 퀴어라는 몸이 규정해버린 몸에 갇혀있고 그것을 모른척하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이 투쟁의 본질이다.




어쩌면 그냥 알아버리는 것


모른척하지 않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나 자신이 어떤 이상적인 여성이나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중성적인 이상형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러나 애초에 왜 '이상적'이어야 했는지, 그것부터 따져볼 일이다.


누구를 위한 이상인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이나 '한'이 시선을 사로잡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집요하게 들춰봐야 한다. 너무 이상적이거나 너무 우울하거나 난해한 작품에 '사로잡힌다'는 건 그 예술의 언어로 '통하는 주파수가 있다'는 의미다.



푸코는 묻는다. 오르가슴이 그토록 강력하다면, 왜 그동안 방대하게 확장된 성적 자유는 자본주의를 해체하거나 가부장제를 거꾸러뜨리지 못했는가? -123p, 성적 행위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예술가의 세계는 사실, 넘을 필요가 없었다. 정제된 언어로, 어쩌면 누군가는 방대한 백과사전급 역사책으로 서술했을 내용의 핵심만 전달하는 랭을 통해서 구조와 심리와 문화적 유전자를 날카롭게 보게 됐으나 그보다도 예술 그 자체를 어떻게 느껴야 할지를 재정립하게 되었다.


고밀도의 지적인 언어와   그대로의 예술사를 경험하고 싶다면 올리비아 랭의 '자유와 연대' 시리즈를 추천한다.




참고: <외로운 도시> 서평


https://brunch.co.kr/@swover/57


해당 책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매거진 '가벼운 예술여행'에서도 볼 수 있다. 곧 개막하는 호퍼의 내한 전시 일정에 따라 여러 매거진에 관련 자료가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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