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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Aug 03. 2024

2. IT개발자의 글쓰기

상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어요

내 직업은 IT개발자다. 나는 무수한 코드 속에서 일한다. 알고리즘을 보고 로직을 넣는다. 요건에 따른 데이터를 추출한다.
감정 대신 실용과 필요가 담긴 글귀를 읽는다.
그러다 퇴근해서 쓰는 글이 내 일과 닮아있을까?
기왕이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쓴다.

*
이과형 머리와 문과형 머리가 다르다는 말을 듣는다. 특히 나처럼 IT분야에 있으면- 아마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라도 한 번쯤, 그런 말을 듣는다.


"그들은(문과형) 우리랑 달라."
"사고방식이 아예 다른 것 같아."


그런 말에 다들 동조하고 웃을 때마다 나는 애써 웃어 보인다. 왜 다를까. 애석한 건 내가 '우리'에 속할지 '그들'에 속할지 정의하기 모호하다는 점이다.
수학이 싫지 않고, 나중에 취직걱정은 없을 거란 두 가지 이유로 이과를 선택했다. 자연대와 공대 중 어디를 갈까 하다가 취업 생각으로 공대를 갔다.
학부 때 '너는 문과생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일어일문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나름의 오덕력이 있어서 무난하게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취업할 때는 바로 이 점을 이용했다. 공학전공자이지만 문학책을 좋아하고, 일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이과생으로써 문과적 사고력이 있다는 점. 당시 유행하던 인문적 소양이 내게 있다고,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럽지만) 취업을 위해 열심히 자기 PR을 했다.
하지만 입사한 회사에선 인문적 소양을 펼치거나 일어를 사용할 일이 전혀 없었고 그저 주어진 일을 묵묵히, 성실하게 해내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지극히 평범하게 취업을 하기 위해 달려왔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글을 쓰고 싶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
낮과 다른 직업을 꿈꾸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느 날은 그런 사람이 세상에 대부분일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그런 사람이 거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회사 내에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는 사람은 멋지다. 하지만 나는 깨달은 이후 언제나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를 몇 년. 고배도 많이 마셨다. 정말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건가 하는 생각? 당연히 해봤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이 쌓일수록,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능률은 조금씩 올라갔다. 어렵고 힘들어서,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매일 야근을 하고 울고 불며 버틴 시간이 쌓여 어느새 나는 9년 차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다.
신입 때만큼 힘들지 않고, 그때만큼 불안정하지도 않은 시기. 하지만 소설을 쓰는 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너무 힘들 때마다 기우제를 생각했다.
기우제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왜냐면 비가 올 때까지 지내는 게 기우제니까.
(이 글은 소설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에 쓰고 싶던 것인데, 언제 쓸 수 있을까 싶어 그냥 지금 쓰련다 ㅎㅎ)
그러니 누군가 기우제를 지내고 싶다면 나는 그를 응원할 것이다. 결국 통할 거니까.

지나고 보면 그에 걸린 시간은 짧으면 기적, 길면 아름다운 과정이 된다. 

*
이 업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IT개발자에 대한 각자의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가 겪은 이 업계는, 그냥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
어렵지만 배우면 할 수 있고 특출 난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재능이 있으면 잘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런 건 어떤 업계든 마찬가지니까..ㅎ
처음엔 너무 하기 싫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배운 점이 많다. 협업하는 법. 내가 아는 분야와 상대방이 아는 분야가 현저히 다를 때 소통하는 법. 보고하는 법. 눈치 보는 법(ㅋ) 등등..
주 52시간제의 특혜를 받은 기업이라, 그전까지는 평일에 개인시간이란 게 없었는데 지금은 저녁시간의 삶도 생겼다.
나는 여전히 출근을 하고, 퇴근하면 어김없이 글을 쓴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앞으로 10년 뒤의 나 역시, 지금은 상상도 못 한 일로 나를 놀라게 해주었으면 싶다.
이과형 머리와 문과형 머리는 다르지 않다고, 이문과형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어느 누구나 알고리즘을 생각하며 따스한 꽃을 보며 웃기를.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고,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를 자문하고 심도 있게 생각하기를. 정확한 Y와 N 사이에선 그것을 고민하고, 그런 여부값으로 나눌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확정 짓는 실수를 하지 않기를.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닌, 세상에 기여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눈앞에 있는 게 무엇이든 스스로 정의하고 움직이기를.
그렇게 자유롭기를.

마지막으로 진부한 말 한마디를 적고 싶다.
세상 모든 직장인, 정말로 정말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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