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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Aug 02. 2024

1. 퇴근 후 소설가

낮과 밤이 다른 사람


"내일 뵙겠습니다."

퇴근을 한다. 사무실을 나서는 발걸음은 언제나..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 가볍다. 요즘처럼 해가 길어지는 시기에는 아직도 한참이나, 하루가 남은 것 같아서 기분이 들뜬다.

가벼운 허기짐을 가지고 집으로 간다. 저녁메뉴를 미리 정해놓으면 더 좋다. 매번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다가 독립한 지 겨우 반년. 아직은 갈길이 멀지만 그 나름의 불안정한 여정을 즐기는 중이다.

짝꿍과 간단한 저녁을 먹고 나서는 잠시 휴식을 가진다. 보통 이때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소파에 늘어져 시간을 보내기 마련인데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매번 생각은 하지만 어려운 일 중 하나.

이내 나는 서재로 들어선다. 멀티탭의 전원을 켜고, 노트북을 연다. 그러면 거의 성공이다.

한글파일을 연다. 타임타이머를 켠다. '여기부터'라고 쓰여있는 부분을 찾아간다. 그리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퇴근 후 소설을 쓰는 작가다.




*

언제부터 나를 작가라고 부르고 싶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학생 때까지 가야 할 것 같다. 나는 수업을 듣기 싫어하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지루한 수업시간에 조는 대신 머릿속에 이것저것 공상을 펼치는 아이였다.

그보다 더 어릴 적엔, 자기 전마다 내가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머릿속에 늘어놓았다.

그래봤자 하늘을 난다거나, 낮에 보던 만화의 뒷내용을 상상해 보는 정도였지만 잠이 들기 전에 눈을 감고 떠올리는 이야기는 그게 무엇이든 그냥 무척 즐거웠다.

자신의 꿈을 계속해서 읊조려라. 말로 하면 이루어지리라. 흔히 말하는 시각화에 어느 날 꽂힌 순간부터 나는 나 스스로를 '작가'라 칭했다.

인정받지 않아도,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나부터가 인정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선 작가의 본분을 내 나름 충실히(?) 수행했다.

현타? 당연히 온다. 나는 작가다 나는 작가다 나는 작가다... 중얼거리고 있노라면 - 그것이 심지어 몇 년씩 계속된다면 -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어디 가서 꿈이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혹여나 비웃음을 받으면 제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공모전에 무수히 떨어지고, 사랑하는 가족을 제외하면 아무도 내 글을 읽은 적이 없고. 정말 안 되는 건가 싶어도 포기가 안되던 어느 날,

나는 진짜 작가가 된 것이다.


*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에 희망은 있다고, 사람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가능하다.

출판사와의 만남. 내가 누군지, 뭐 하는 사람인지, 어디서 사는지.. 그냥 아예 몰랐던 낯선 타인이 건네는 칭찬은 마음을 흐물거리게 만들었다.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호칭도, 계속 글을 써달라는, 당신의 글이 좋다는 말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좋았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세상에. 책이라니. 내가 책을 냈다니.

내 이름이 적힌 소설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나왔다니.

하지만 다음 스테이지에 가면 또 다음 난관이 있는 법.. 나도 모르는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

작가가 되었다. 달랑 한 권이어도 소설을 썼으니, 소설가라고 해도 될 것이다.

떳떳해진 나는 나를 둘러싼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그대로였다.

여전히 나는 직장을 다니며 매일매일 글을 쓴다. 첫 소설이 나왔다고 해서 누군가 내게 글을 써달라 청탁하지 않는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엔..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 소설가다.

한 권의 책이 나왔고, 그 책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여전히 글을 쓴다. 소설을 쓴다.

그런 내가 '쓰기'에 대해 말한다면, 자격이 없는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단 한 명에게라도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충분할 것 같다.

왕초보에겐 전문가보다 초보가 하는 말이 더 와닿는 것처럼.

원래 수습 때는 20년 차 선배보다 1년 차 선배가 훨씬 도움이 되는 것처럼.

직장생활 9년 차. 소설가 1년 차. (지망생 8년)

나만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거라 믿으며 한 번 써보겠다.




퇴근 후 소설가의 책 <세벽>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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